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인간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니체는 말했다. 그 너머에는 위버멘쉬(초인)가 있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체는 인간에 대해 위버멘쉬와 짐승 사이의 줄을 티는 존재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줄 위에서 짐승을 향할 수도 있으며, 위버멘쉬를 향할 수도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간은 향하는 존재이지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즉, 위버멘쉬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뿐이지 항상 위버멘쉬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니체는 전자, 짐승으로 나아가는 자를 인간말종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만을 원하며, 단지 그렇게 오래 살기만을 바란다. 남들만큼만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그러나 위버멘쉬는 창조하는 자다. 편안함에 머물러서는 무엇도 창조할 수 없다.
위버멘쉬는 독일어로 über(넘어선) + mensch(사람)이다. 즉, 인간을 극복한 사람이다. 니체는 사람의 정신을 3가지로 구분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변화를 말하련다. 정신이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아이가 되는지를"
낙타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그저 이끌리는 순종하는 정신이다.
사자의 정신은 "너는 해야 한다."라는 외침에 "나는 원한다!"라고 답하는, 자유를 갈망하는 정신이다.
아이의 정신은 스스로 창조하는 정신이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무엇을 향한 자유'를 외치는 정신이다. 끊임없이 놀이하듯 세계를 창조하고, 매 순간을 처음처럼 즐기며 긍정하는 정신이다. 이 아이의 정신이 위버멘쉬의 정신이다.
삶에 정답이 있을까? 적어도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누가 한 사람의 인생에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부분에 대해서 도덕의 잣대를 들이밀 수는 있겠지만, 그 일부분이 전체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도덕의 잣대마저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그리고 니체의 대답도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니체는 절대성을 내세우는 기존의 그리스도교 도덕을 비판한다. 그리고 자신이 따라갈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의 앞에는 늘 파괴가 서있다.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도덕관념을 깨부숴야 한다. 모든 창조는 하강에서 시작된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선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
그렇다면, 파괴된 기존의 절대적 가치 위에 아무렇게나 새로운 구조를 쌓아 올려도 되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새로 쌓아 올리는 구조물은 당연히 더 견고하고, 더 발전해야 한다. 새로 지은 건물이 옛 건물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기존의 사상을 넘어서는 이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관념이 강할수록 그에 맞서는 고통은 커진다.
위버멘쉬는 이 고통, 창조를 위한 하강의 고통마저도 즐기는 자다. 고통이 클수록, 기존의 사상과 관념이 강할수록, 그 이후 창조의 환희는 커질 것이다. 그렇기에 위버멘쉬란 전사다. 강한 적에게 강한 열정으로 맞서며 그 과정의 고통, 그 이후의 기쁨을 모두 긍정할 수 있는 전사다.
현대인들에게 니체는 매우 친숙한 철학자 중 한 명이다. 당장 시중에 나와 있는 서적들만 봐도 니체의 저서나 니체의 사상과 관련된 책들이 매우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니체의 사상이 이렇게 주목받는 까닭은 아마 그저 세상에 내던져져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그 삶의 공허한 갈증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은 그 매력만큼이나 위험하기도 하다. 뒤틀린 권력과 만난 그의 사상은 세상을 전쟁의 불길로 이끌었었다. 또한 니체 역시도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니체의 생각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밧줄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기도 하고, 그러다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하강은 상승을 위한 것임을. 그러니 계속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저마다 삶에 대한 답을 찾기를 바란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