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철학

진리는 늘 가까이에 있다

by 김준겸

"과가 어디세요?"

"철학과입니다."

이 대답 이후 백이면 백 다들 이렇게 묻는다.

"거기선 뭘 배워요?"


만약 수학과라면, 사학과라면 기타 다른 학과들이라면 학과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을 배울지 추상적으로나마 연상된다. 그러나 철학? 솔직히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 한 번에 떠올리기 어렵다. 나 역시도 명확히 답하긴 어렵다. 그러니 "철학을 배웁니다."라고 하거나 웃어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래도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가 정확이 어떤 것인지 한 번쯤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시작은 교수님의 질문이었다.


"철학은 무슨 학문입니까?"

무슨 답이 떠오르는가? 흔히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리는 무엇일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해도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진리는 하나일 것이다.


진리가 두 개일 수 있을까?

그럼 아마 둘 중에 하나만 맞았거나, 혹은 둘 다 틀렸을 수도 있다. 1 + 1의 답이 두 개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수많은 사상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죄다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그럼 이들의 말 중에 무엇이 옳은 말일까? (일단 그런 게 있기는 하다면 말이다.) 위의 전제대로라면 딱 하나만 맞는 말이거나 다 틀린 말일 것이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무엇을 공부하는가?

그 교수님의 의견을 옮겨보자면 철학은 생각하는 학문이다. 정확히는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삶을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가? 살아있기만 하다면 막살아도 문제없을까? 아니다. 우리는 '잘'살아야 한다. 즉, 철학은 어떻게 '잘'살 것인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잘삶' 이걸 다른 말로 바꾸면 무엇이 될까?

다양한 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자면 '행복'일 것이다. 그럼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무엇이 행복이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 지금 머릿속에는 다양한 생각이 스쳐갈 것이다.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지부터가 의문일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아직까지도 철학자들이 저마다 다른 주장을 펼치며 이렇다 할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에우다이모니아라고 불렀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 수호신이 깃들어 있는 정신' 정도의 뜻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한 삶은 '이성적 능력을 탁월히 발휘하여 평생에 걸쳐 덕을 실천하는 삶'이다.

불교에서는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중도의 수행을 통해 연기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벗어난 열반에 이르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또한 기독교는 신의 뜻에 따르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곧 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수많은 주장들이 공존하는 다원성은 철학의 핵심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많은 주장들을 다 알아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수많은 행복에 관한 주장들에는, 서로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하나의 공통된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유교의 인이든, 불교의 공이든, 도교의 도이든, 기독교의 교리든,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든 간에 적어도 이 한 가지만큼은 같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랑'이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랑이라는 건 그동안의 수많은 성인들이 거듭해서 강조해 왔음에도 여전히 성취되지 못했다. 사랑은 인류가 존재한 이래도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난제 중의 난제다. 당장 자신만 돌아보아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더 나아가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을 때가 존재한다. 하물며 전혀 연이 없는 타인에 대해서는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생각들이 어떻게 사랑이라는 틀로 연결될까?

우선, 인은 곧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마음이다.

공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는데 어떻게 서로를 함부로 대하겠는가?

도의 관점에서 만물은 평등하다. 우리 모두 평등하니 나를 아끼는 만큼 너를 아껴야 한다.

기독교의 십계명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덕과 윤리도 결국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마음을 살짝 기울이는 일, 그렇게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는 점점 불어나 나중에는 세상을 다 뒤덮을지도 모를 일이다.


철학은 결국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묻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늘 사랑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고, 불교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12>

철학은 실천의 학문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없다면, 어떤 성인의 말씀이라도 그저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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