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주의자 앨리스 Aug 13. 2024

벗어날 수 없다면

스텔라의 집

나지막한 하얀 건물. 입구 위에는 ‘스텔라의 집’이라는 현판이 걸렸고 그 옆으로 둥근 방패 바탕에 붉은 십자 문양. 사랑, 애덕, 자선을 뜻하는 카리타스 로고. 

 1층의 좁고 긴 사무실은 북향이었다. 창문은 책장으로 거의 가려져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고 안에서도 바깥을 향해 어떤 신호도 보낼 수 없다. 책상에 앉은 사람들은 온통 검정 유니폼을 입고 분주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선생님, 일지 쓸 게 많아요?” 생활실에 있어야 할 신입이 인희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화장실이 급해서요.” 얼굴이 발그레한 게 생김새에서 풋내가 나는 신입은 불안한 표정으로 생활실 방향을 힐끔거리며 바지춤을 움켜쥐었다. 

 “알았어. 내가 생활실 보고 있을게.” 인희의 말에 신입 직원은 재빨리 사라졌다. 인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섰고 서두르지 않았다. 오후 4시가 넘은 지금은 장애인들이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정리할 시간이다.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희는 작성하던 일지를 마저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희는 꼿꼿한 자세로 생활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등치가 제법 있는 상체는 키도 덩달아 크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이 일을 하는데 단단해 보이는 외관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소파에 앉아 발을 포개어 발목을 까닥거리던 장애인은 인희가 들어서자 고개를 꺾으며 인사했다. 인희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신호를 보내고는 열린 방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며 장애인의 동태를 살폈다. 방마다 둘 혹은 세 명이 각자의 서랍에 세탁이 끝난 옷을 쑤셔 넣기도 하고 각을 맞춰 접어놓고 있었다. 간혹 인희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가도 이내 하던 일에 집중했다. 인희는 한 명 두 명 숫자를 세어 전원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소파에 앉아 인사하던 장애인이 다가와 손을 내밀어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선생님, 이제 일지 쓰러 가셔도 돼요.” 어느새 신입이 돌아왔다. 장애인과 머리를 맞대고 영상을 보던 인희는 미처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로 고개를 들었다. 신입은 평소와 달리 부드러워 보이는 인희 표정에 용기가 났는지 말을 더했다. “낮 근무 선생님이 4시에 퇴근하고 나면 혼자 있는데, 화장실이 급할 때 난감하더라고요.” 신입은 얼굴을 조금 일그러뜨렸는데 앳된 얼굴이 무척 곤란해 보였다. 이 일을 시작할 때 화장실 가는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겠지. 아직 수습 기간이니 도망갈 기회는 충분했다. 인희는 아직 신입의 이름을 외지 않은 게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인희는 여전히 동영상에 빠져있는 장애인에게서 핸드폰을 휙 뺏었다. 조건반사처럼 “악” 하는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인희는 무심히 이들을 지나쳐 사무실로 돌아갔다. 혼자 있어 진짜 곤란한 상황은 갑자기 장애인이 소리를 지르거나 울거나 덤벼들 때이다.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맡은 시간 내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순전히 지금 여기 존재하는 사람의 몫이다. 교육받은 매뉴얼에 의지할 수도 있고 임기응변으로 수습할 수도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인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라고 각자에게 책임을 떠맡겼지만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지 못한 방식을 휘두르도록 내몰면서 결과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반려가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