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벗어날 수 없다면’ 은 소설 쓰기 강좌에 제출한 과제였다. A4용지 9장 분량의 단편 소설이고 앞서 올린 <1. 스텔라의 집>은 서두에 해당된다. 이어지는 내용을 올리기 전에 합평에서 들은 내용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먼저 말하고 싶다.
합평을 시작하기 전에 강사인 작가가 이번이 몇 번째 소설이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괜스레 기대가 되었다. 글을 보니 소설을 썼던 가닥이 풍기나 싶었고 내심 내 글이 잘 쓰였나 싶었다. 나는 한 다섯 편 정도 썼다고 대답했고 합평이 시작되었다.
먼저 수강생의 합평을 들었다. 주인공 인희가 지닌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설명 부족으로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나타난 에피소드로는 어머니에 대한 인희의 강한 거부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정도 넣어 보강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사인 작가의 합평은 이랬다. 구성을 손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물은 후 그 메시지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소리집합소 같았다’(글에 이런 표현이 있다.)에 비해 청각적 이미지라기보다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어르신이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질주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어르신이 그런 상태로 질주하기는 어렵다며. 몇 번째 소설인지 물어본 이유는 듣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설명하지 못했지만(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준비한 말도 잊어버렸다) 이 자리를 빌려 몇 마디 해 보려고 한다.
우선 구성에 있어 스텔라의 집 사무실 묘사에서, 창이 막혀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인희의 마음 상태를 알리는 장치였다. 인희가 자기 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상황을 표현한 것이었다.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서 아무런 도움이나 방법의 제시 없이 알아서 잘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서술은 스텔라의 집 신입에게 알아서 장애인 돌봄을 알아서 해 내라는 의미와 보편적인 인생의 파도 앞에 선 사람 또한 그렇다는 은유였다.
그래서 스텔라의 집을 서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 안에 전체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에. 하지만 이런 장치는 글쓴이만 알고 독자는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미약하긴 했던 듯하다.
수강생의 합평에 대해서는 이를 이야기한 사람이 하필 남성이어서 나의 편견이 발동했다. 인희가 겪는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이 글에 나타난 에피소드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딸과 어머니의 복잡한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한 남성의 시각, 어쩌면 인자한 부모에 복종하는 자녀 혹은 부모는 당연히 자녀를 사랑하며 부모의 말과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말이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합평 내용을 수용하기는 할 것이다.
합평이 끝나고 드는 생각은 소설 속의 문장은 이유 없이 있어서는 안 되며 그 문장이 그 자리에 있는 이유, 논리, 타당성이 독자에게 납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각자의 몫인 걸로.
또 한 가지 내성적인 사람의 영향력을 생각했던 계기도 되었다. 합평을 받느라 앞에 나가 수강생을 마주 보고 앉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하야진 나는 하고자 한 말도 제대로 못 하였지만 그런 나로 인해 합평 분위기가 불편하고 어색해진 것도 있었다. 합평을 주는 입장에서는 내가 말을 안 하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합평 중에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중간중간 이어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앞에 나와 앉아 있으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저 읽어주셔서 고맙다고만 하고 말았으니까.
‘벗어날 수 없다면’ 다음 글은 합평 내용을 반영하여 수정하고 올리려고 한다. 합평에 대한 내 생각은 뒤로 하고 합평 내용을 받아들여 얻은 결과물은 어떨지 궁금하기는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