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카피 Jul 13. 2022

사주로 팔자를 고치다.

돌아보니 힘이 되었던 용한 점쟁이 이야기

[크리스천 스킵 주의]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때는 대학교 4학년 1학기, 3학년 2학기 때부터 서울 광고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니던 조급한 얼리 취준생이던 그때. 부산 문현동에 아주 용하다는 철학관에 태어나 처음 발을 내딛게 되었다. 신을 모시지 않는 오직 사주로만 명리를 풀어내는 집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알려드렸다. 눈살을 찌푸리기를 몇 번, 이윽고 입을 여는 그녀.


마흔 살까지는 곧 죽어도 취업이 안된다. 설령 취업이 된다 해도 1년을 못 버티는 알바 인생이 될 것이다. 마흔 살 전까지 취업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마라. 헛수고다. 팔자가 그렇다. 마흔까지 죽었다 생각하고 바람 나부끼듯 얻어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넙죽 엎드려라. 그래야 마흔 넘어 좋은 일이 생긴다.


멍하니 아득했다. 어떡하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동동 발을 굴렀다. 나 이대로 운명 앞에 주저앉나. 아니야. 그건 아니야. 까짓 운명 내가 바꿔보지 뭐. 하며 4학년 2학기에 당시 부산의 메이저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2개월을 겨우 버티며 아 이게 바로 그 점쟁이가 얘기한 사주의 현실판인가. 그 운명이 정녕 맞았던 것인가 하며 퇴사를 했다. 입사하자마자 사수였던 선배가 2주일 후 퇴사를 했고 대학생인 내가 단 한 명뿐인 메인 카피라이터가 되어 야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건 정말 아니야. 운명을 바꿔야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참을 수는 없는 거야.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의 운명을 토닥이며 그렇게 첫 번째 도전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은 부산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에 입사해 4년 간 역시 한 명뿐인 메인 카피라이터로서 생사를 오가다 지금의 회사 홍보팀으로 온 지 벌써 18년이 넘었다. 한 회사에 1년도 채 있지 못한다는 점쟁이의 저주 같은 선고에 당당히 맞서며 운명을 고쳐먹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난 오히려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녀의 그 저주 같은 선고로 인해 난 더 악착같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자기 계발에 목숨을 걸었다.

@ pixabay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 일이다. 당시 용하다고 소개받은 부산 면의 처녀보살집에 새벽같이 가 기다렸다. 주말 일찍 가서 기다린 보람으로 첫 번째에 사주를 볼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부르르 몸을 떠는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지금 내가 걸어 들어오면서 물에 젖은 아저씨가 뒤따라 왔단다. 물에 빠져 죽은 조상이 함께 걸어 들어왔다는 것. 이미 온몸이 소름으로 쫙. 방송, 연예 쪽 일을 하고 있을 거라며 지금 가까운 미래의 아내로 여자 둘이 보인다고 했다.


당시 대학원의 동기 한 명과 최근 소개팅을 한 친구가 떠올랐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매끈하게 생겼으며 단발머리다. 성질이 좀 까칠하고 결혼하면 힘들어진다. 또 한 명은 키가 좀 작고 안경을 썼으며 아주 평범하게 생겼다. 머리가 영리하고 아주 예의 바른 사람이다. 네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 여자애가 미래 아내로서 좋다. 그래야 잘 살고 행복해진다. 지금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마흔 살이 넘으면 모든 악재가 사라지고 마흔다섯 살이 넘으면 인생이 쫙 펴진다.


결혼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느낌이 좋았고 그녀에게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 당시 미혼인 남성의 37살은 죄책감이 들 정도의 늦은 혼기였다. 마음이 가는데 운명도 좋다고 하니 더욱 자연스럽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석 달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이도 바로 생겼다. 용하다는 점쟁이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인상착의까지 디테일하게 알려주며 방향을 제시해주는 그녀가 너무 신기했고 고마웠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그녀는 결혼을 해 더 이상 처녀보살이 아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처녀보살이라는 상호명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고.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자리에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당시 회사의 몇몇 직원들도 그녀를 찾아 소름 끼치는 많은 경험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 pixabay


사주나 철학, 신점을 그래서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미 삼아, 답답해서 가보게 되는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며 조심할 건 조심하고 뛰어넘을 건 뛰어넘을 수 있는 자신만의 방패막을 만드는 것도 나름 뜻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돈 아깝게 그런 걸 왜 봐? 시간이 남아도나 보네. 같은 핀잔도 겸허히 수용한다. 어차피 아주 가끔 보는 사주는 나를 위해 투자하는 책 한 권의 독서와도 같은 시간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편백 인테리어, 비염이 사라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