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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l 17. 2022

내 영혼의 카레라이스

눈물이 왈칵 쏟아진 어머니의 손때 묻은 그릇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던 그때,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가셨다. 전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으로 맛있는 저녁 메뉴를 여쭈었지만 답을 하지 않으셨고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요양병원의 구급차에 실려 떠나셨다. 손을 놓지 않으려 나의 손에 힘을 꽉 주는 어머니로 나도 어머니도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떠나셨고 나는 출장, 출근이 잡힌 주말이 아니면 한주도 빠지지 않고 한 주에 한 번은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작은 요구르트와 바나나를 꼭 사 오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어김없이 병실에 계신 분들께 하나씩 나눠드리라며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그러셨다. 30대 중반에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막내아들이 늘 마음에 걸린다며 좋은 신붓감이 없냐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읍소를 하시던 어머니.


그렇게 꼬박 7년의 병원 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문득 내게 집에 가면 작은 방의 상자 두 개를 꺼내 보라고 하셨다. 너를 위해 평생 모은 것이니 꼭 잘 썼으면 한다고 하셨다. 집에 가서 무심히 상자를 찾아 열어보았다. 두 상자 가득 그릇이었다. 칠이 벗겨진 그릇부터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오래된 상자 속의 그릇까지. 막내아들이 결혼하면 고마운 며느리 고생하지 않도록 물려 주려 평생을 모아둔 그릇을 담은 상자였다. 그만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얼마 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변변하게 맛있는 거 한번 사드린 적 없는 불효자식으로 남겨진 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의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릇 가득한 두 상자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두 상자의 그릇을 그대로 신혼집으로 들고 와 주방 세팅을 했다. 덕분에 아내는 그릇은 거의 마련해 오지 않아도 되었다.




주말 오늘 아침, 카레라이스를 오랜만에 만들며 어떤 그릇에 담을까 하다 어머니의 오랜 카레라이스 그릇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주말 우리 가족의 단골 메뉴였던 카레라이스, 어쩌면 많은 집들의 공통 메뉴였을 것이다. 카레라이스든 하이라이스든 덮밥이든 볶음밥이든 늘 한결같은 플레이팅으로 담아주시던 하얀 그릇. 그 그릇이 그대로 상자에 실려 왔었고 결혼 생활 12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놓여있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카레라이스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아침부터 재료를 준비하고 돼지고기와 야채를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다 카레 가루를 조금씩 넣어 저어 끓였다. 일요일 오전 일이 있는 아내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어머니의 카레라이스 그릇에 내 영혼을 담은 카레라이스를 담아 식탁에 올렸다. 어머니의 영혼 가득 카레가 담겨 있던 이 그릇에 내 영혼을 담아 끓여 만든 카레를 담아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는다.


40년도 더 된 그릇, 어머니의 마음이 알알이 담긴 그릇들을 다시 본다. 내게 이어진 이 마음들을 내 아이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학교 급식 카레라이스도 맛있지만 아빠가 해준 카레라이스는 그보다 열 배는 더 맛있다며 바닥까지 삭삭 긁어먹는 아들, 학교 급식엔 고기가 많아도 3개인데 아빠가 해준 카레라이스엔 고기가 10개보다도 많다며 특급 칭찬을 해준 아들.



아들아. 네가 결혼하게 되면 그때 할머니가 주신 그릇 중에 아빠가 무지 아끼는 그릇들을 보내 줄게. 세상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들에게도 아빠처럼 맛있는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먹으렴. 할머니의 사랑이 아빠에게서 네게로, 네게서 네 아이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맛있는 내 영혼의 카레라이스를 만들자꾸나. 별 거 아닌 카레라이스 하나에 담긴 너와 나의 오랜 내 영혼의 카레라이스를 함께 만들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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