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 이상 갈 필요가 없게 되었지만.
[크리스천 스킵 주의]
사주를 보러 갈 때면 신점인지 사주로만 보는 철학관인지 꼭 확인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신점을 본다는 게 좀 꺼려지는 탓이다. 사주는 다 같은 건데 한 번 가면 끝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사주는 같지만 그걸 풀이하는 데 있어 차이가 있다. 어떻게 잘 풀이해서 답답한 상황에 대한 답을, 앞으로의 길에 대한 길잡이를 해줄지가 관건인 셈이다.
10년 간 매년 찾게 되는 집이 있다. 부산 해운대에 자리한 그곳은 드라마 미남당에 나오는 그런 화려한 곳은 아니다. 수수한 공간에 구수한 입담을 풀어주는 곳이다. 처음 방문을 하게 되면 10년 단위로 생애 운명을 풀어준다. 무엇보다 좋은 건 긴 이야기를 타이핑해 출력해 준다는 것. 생각이 나지 않을 때마다 꺼내서 다시 돌아보고 갈 길에 대해 스스로 되물을 수 있다.
생애 사주를 끝내고 다음 해 내년 신년 운수를 보고 있는 그곳에 몇 해 전에 갔을 때 그는 내가 오기 전에 스스로 점을 쳐 보았다고 한다.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가 하는 말. 경쟁에 있는 사람이 나를 밟고 일어선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여자가 나를 도와준다. 힘든 상황이 와도 참고 견디면 좋은 일이 온다.
당시 팀장이 되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다른 부서와 합쳐지며 팀원이 된 찰나였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여성 상사가 많은 위로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궁금해서 갔던 건데 말도 꺼내기 전에 일러주니 놀라울 따름. 신년 운수는 1년 12개월의 달마다 일어날 일들에 대해 풀어주며 타이핑을 해준다. 그리고 이내 출력물을 결과물로 건네준다.
그렇게 1년의 루틴으로 시작한다. 정치인의 아내도, 유명한 로펌의 대표님도, 언론사에 근무하는 분들도 가끔 들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 내겐 더욱 좋은 집이다. 신점이 아닌 오직 사주로만 풀이하며 명쾌하게 인생을 풀어주는 집, 여전히 난 매년 신년 운세를 보러 점점 더 가게 될 것이다.
이곳은 부산 송정에 위치한 집이다. 하도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게 되었고 토요일 새벽 6시에 도착해 기다렸다. 예약이 안 되는 곳이란다. 이미 세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 놀랬다. 부동산 그리고 아이들의 진로, 입시와 관련해 특히 정통하다는 바이럴이 있었다. 차례가 되어 앉자마자 어디 사냐고 물었다. 좋은 곳에 살고 있다고 혹시라도 이사를 간다면 이 동네로 가라고 조언했다.
사업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라며 평생직장생활이 운명이란다. 나의 부동산과 관련한 운은 모두 아내의 것이니 아내 말만 잘 들으면 된단다. 아이는 알아서 잘 클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의대를 갈 거라는 말에 아내와 나는 오늘 온 보람 있다며 역시 잘하는 곳이 맞다며 위안했다. 운이 좋은 운명이니 다시는 이런 곳에 올 필요 없다며 쐐기를 박으셨다.
이후 가족을 비롯해 3명을 소개해 보냈다. 3명 모두 가자마자 다짜고짜 운이 좋으니 이런데 올 필요 없다. 볼 것도 없다. 돈을 낼 필요도 없다며 내보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볼 필요도 없고 돈도 필요 없다는 그의 철학에 그저 놀라울 뿐. 이곳을 다녀온 후 그리 많은 점집을 가지 않은 나였지만 해운대의 그곳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더 이상 내 운을 확인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점집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답답하거나 궁금하거나. 결정이 필요한 순간. 맹목적인 신뢰만 아니라면 참고하는 정도로 알아보는데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내 기준에서 말이다. 이로 인해 결정 장애를 겪는 가장 최악의 상황만 아니라면 말이다.
올해 3월 10일부터 7월 6일까지 죽도록 회사를 관두고 싶을 기간이라고 했다. 그 기간이 지났고 12월까지 매달 새로운 운명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떤 운명이, 그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의연하게 준비된 마음으로 맞을 채비를 마쳤다. 내년엔 또 다른 즐겁고 행복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