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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l 18. 2022

상사라면, 정명석 변호사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진짜 주연, 배우 강기영에 대한 시선

자페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드라마라니. 작정하고 안 봤다. 보고 싶지 않았다. 예술치료캠프를 통해 매년 자폐 발달장애 형제들과 함께 해오며 아이들과 부모들과의 시간 속에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또한 끝없는 레이스를 해야 하는지의 고충을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려냈을까. 아름답게만 담아내진 않았을까.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평일 TV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상이라 가끔 온라인 뉴스에서나 소식을 접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박은빈의 호연이 돋보인다는 바이럴로 결국 넷플릭스를 통해 마주하게 되었다. 1, 2화를 보곤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연이어 봤다간 감정 조절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숨을 골랐다. 그리고 주말 몰아보기로 6화까지 정주행 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당연히 배우 박은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감정선으로 몰입을 이끌어 준다. 그리고 뜻밖의 캐스팅인 동그람 역의 주현영, 그리고 부드러운 잘생김의 아이콘, 이준호 역의 강태오가 특히 돋보인다. 최수연 역의 하윤경, 권민우 역의 주종혁, 우영우 아버지 역의 전배수, 태수미 역의 진경, 한선영 역의 백지원까지 어느 배우 하나 모자람 없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원석이 바로 내겐 정명석 변호사 역의 배우 강기영이다. 장애로 인해 기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늘 균형을 잡으며 조직을 이끌어 나간다. 한 팀원에게 업무나 공이 치우지지 않도록 업무를 나누고 보이지 않도록 도와주고 그의 공은 감쪽같이 숨긴다. 어려울 때 도와주고 더 많이 도와주지 않으므로써 그가 혼자 일어설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준다.


드라마 속의 정명석 변호사_넷플릭스 캡처


이토록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어쩌면 기나긴 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상사가 되지 못한 것 때문에 혹은 그와 싱크로율이 아주 높은 상사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내게도 이런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런 상사가 되어야지 하는 모델들이 있었을 테지만 삶이 어디 그런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그런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런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아니다. 개 중에 운 좋게 그런 사람을 만났거나 그런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알거나 모르거나.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이라고 생각한다. 주니어 1, 2년 차까지는 누구나 막내다. 그 막내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 물론 내 유일한 팀원인 모 선임은 입사 후 지금까지 줄곧 막내지만 말이다. 내 상사가 이런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기보다 내가 그의 상사로 어떤 사람이 될지를 그려보자.


난 상사 복도 지지리도 없다고 한탄을 하기보다 내가 그에게 어떤 상사인지에 대해 말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위해 호칭을 변경하고 직급 체계를 바꾸는 기업들이 많다. 갓 입사한 직원이 대표이사에게 ~씨, ~님이라고 부르는 문화는 다소 생소하기조차 하지만 뭐 여하튼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과연 진정한 수평적 조직으로 평평하기만 한 걸까.  그 속에서조차 질서는 필요하지 않은가. 우선순위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고서도 조직이 유유히 잘 흘러갈 수 있는 걸까. (꼰송하다.)


물론 모두가 정명석 변호사가 될 수는 없다. 한없이 인자한 상사로 미소 띨 순 없다. 다만 내 주니어 시절, 절대 저런 상사는 되지 말아야지 했던 그 상사의 모습만 아니면 된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꿈꿨던 상사의 모습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무슨 소용이람. 가끔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보며 내 모습을 투영하고 조금씩이라도 변화될 수 있는 여지를 찾는 짧은 계기, 그 현실의 기회를 포착하자. 큰 욕심 없이 그렇게, 그런 작은 기회를 통해.




돋보이는 팀원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을 더 빛나게 하는 팀원을 아끼는 상사가 되리란 주니어 시절의 다짐이 생각난다. 물론 아직 그러지 못했고 나 역시도 팀장이면서 실이라는 조직의 일원일 뿐이다. 팀장이면서 팀원인 셈이다. 내가 팀원들에게 어떤 팀장이고 임원에게 어떤 팀장 일지. 내게 팀원들은 어떤 존재이며 임원은 내게 어떤 상사 일지. 아직도 무수한 숙제가 산적해있다. 아직 남은 드라마 우영우가 핫도그 속의 소시지처럼 기다려진다. 그 속에서 사회에 대해, 조직에 대해, 그리고 내 가족에 대한 많은 생각의 실타래를 지금부터 풀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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