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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Aug 13. 2022

길을 가다 번개탄 피운 사람을 목격한다면

모른 체 못 본 척하지는 않는가?

성폭행도, 살해도, 더 심한 상황 속에서도 알아도 모른 체, 봐도 못 본척하는 중국의 '웨이관'(圍觀·방관자) 문화에 대한 기사를 한 번씩은 봤을 법하다. 중국의 실험카메라를 통한 검증은 물론 무참히 살해되고 있는 소년을 살려낼 생각은 하지 않고 SNS인 웨이보에 올려 흥미의 소재로 삼고 결국 소년이 죽었다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한 소녀에 대한 SNS를 통한 자살 독려로 인해 결국 그 소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는 뭐 더 말할 나위가 없을 나락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케이스였다.


지인 중에 한 분이 오늘 길을 가다 차 안에서 번개탄에 불을 피우고 눈을 감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눈에도 보일 법한 이 광경을 단 한 사람도 되돌아보는 사람이 없더란다. 자기 갈길 바삐 갈 생각만 하더란다. 눈앞에서 누가 죽어가든 말든 맞든 말든 울든 말든 그는 그고 나는 나인 그런 상황.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낸 그는 112에 신고를 했고 놀랍게도 빨리 출동한 경찰은 차문을 열고 그를 병원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자, 냉정히 그 순간이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진 상황이라면 우린,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119에 구조요청을 하고 그의 이후 상황까지 확인할 오지랖이 있을까? 괜히 이 상황에 연루되어 연락을 받아야 하고 확인을 해줘야 하고 그 귀찮은 일들을 내가 왜?라는 생각들이 다분하리라 본다. 어쩌면 나 역시도 그 순간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의 회로들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토록 이기적이고도 건조하게 메말라 버린 걸까.


문득 이 생각만 하나만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목격자가 아니라 그 상황의 당사자가 바로 나라면, 그 상황을 목격한 모든 사람이 외면해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면 과연 난 어떤 생각이 하게 될까. 뭐 이웃을 생각하자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당장 얼마 전 이사 온 옆집도 단 한 번도 인사를 하지 않았고 아직도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코로나 벌어진 거리는 당연하게 되었고 그 벌어진 틈 사이로 더 큰 틈이 생겨 너는 너, 나는 나, '우리'라는 단어는 점점 소멸되고 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신고를 하고 이후 상황까지 챙기는 살뜰한 사람, 요즘 보기 드물다. 천사라고 그에게 얘기했지만 그는 한사코 그런 소릴 하지 말란다. 평소에 작은 것 하나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그이기에 그러면 꼭 신고를 했을 법도 하지만 오늘따라 그가 왜 이렇게 대견하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질까. 살벌한 뉴스만 쏟아지는 요즘, 이런 훈훈한 미담 같은 기사도 간간히 단비처럼 쏟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명을 다시 얻게 된 그가 평생 그에게 고마워하기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누릴 수 있음에 더 행복해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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