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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Aug 14. 2022

호텔을 못 가니 조식이라도

코로나 시대, 여행 못 가는 우리를 위한 정신승리

1주일의 긴 여름휴가, 그리고 이어진 3일의 연휴 동안 우리 가족은 그 어디도 여행을 가지 못했다. 부산에 살면서도 그 흔한 부산의 바닷가에도 말이다. 여전히 식지 않은 코로나의 열기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자는 의도였지만 매일 스포츠 클럽을 하루 종일 다녀오느라 피곤한 아이였지만 아쉬움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코로나 이전 매년 휴가마다 연례행사처럼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터라 벌써 2년 동안 이어진 공백에 아이는 생각보다 상심이 컸다. 한 지인은 유럽 한 달 살기를 떠났고 짧게라도 어느 순간 해외여행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친구들은 캠핑에 빠져 매주 떠나고 있고 풀빌라 펜션으로 가족끼리 떠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휴가 전 다녀온 부산 기장 여행 이후 한 곳도 가지 못한 아이에게 오늘 연휴의 중간 지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귓가에 속삭였다.


아들아. 지금 여기가 호텔이라고 생각해보자. 여행 가면 호텔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가 옆에 있었지? 휴일이니까 오늘 이렇게 아빠가 바로 옆에 있잖아.
아빠! 우리 침대는 호텔보다 안 좋잖아. 이불도 그렇고. 호텔은 호텔이고 집은 집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휴가 때도 두 번을 그리고 연휴인 오늘도 속삭였지만 11살이 된 아이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었다. 더는 속삭였다간 귀를 막을 거 같아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어제 사둔 빵과 농장에서 수확한 작은 과일들을 간단하게 플레이팅 했다. 소식좌인 우리 가족에게 여기에 햄과 스크램블까지는 과식이 될 거 같았다.

간단히 차린 조식


빵 한 조각을 남겼지만 호텔 조식을 먹는 거 같다는 아이의 말에 일어나자마자 귓가에 속삭였던 정신승리를 위한 거짓말이 살짝 미안해졌다. 가족여행도 좋지만 매일 여행을 가듯 함께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서로 이야기하며 함께 잠을 자고 여행지에서 아침을 맞이하듯 눈을 뜨는 일상이 진짜 여행 아닐까? 우리가 태어나 눈을 감고 죽는 순간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기나긴 여행의 여정이듯.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SNS에 올리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나를 위한 여행으로, 그런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지금 가족과 함께 이 소중한 순간 하나하나가 바로 행복한 여행의 여정이라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눠보자.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하겠지만 근사한 호텔 조식처럼 아침을 플레이팅 해서 가족과 둘러앉아 호텔의 추억을 나눠보자.


코로나의 긴 터널 끝에 함께 떠날 그날이 오리라는 희망과 함께. 다시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어떤 일정으로 다녀오면 좋을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가족의 시간을 가져보자. 당장 한국의 어떤 지역으로, 해외를 간다면 어떤 나라를 가고 싶냐는 대화를 시작으로 말이다.

아이와 아침 산책길 손을 모아 만든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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