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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Sep 01. 2022

야! 너두, 아트테크 할 수 있어

어쩌다 컬렉터

솔직히 아트테크까지는 좀 오버겠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거실에 걸기 위해 그림 몇개를 산거고 그렇게 사다보니 컬렉터라는 부끄러운 이름도 생긴 걸 보면. 그토록 부동산에 관심 가질 때 그림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질 걸 하는 후회가 좀 생기기도 한다. 부동산도 실물 경제지만 그림 또한 명백한 실물 경제니까.


거주할 수 있고 발을 디딜 수 있는 부동산의 실물처럼 예술 작품은 보고 또 봐도 좋은 존재다. 거실에 걸어도 좋고 안방에 걸어도 좋고 집의 어딘가에 늘 봐도 좋은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는 건, 새삼 축복이다. 이런 얘길하면 얼마나 샀길래, 얼마나 올랐길래, 하는 분들 계실거다.


몇개 사지도 않았고 가치는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내 눈앞에 걸린 그림이 좋을 뿐이다. 처음 그림을 갖게 된건 가까운 선배가 선물해 준 아주 작은 새 그림이다. 이중섭 화백의 스승이라는 분의 작품인데 한참을 방 구석에 두었다가 어느날 꺼내 방안에 걸었다. 방안으로 예쁜 새 한마리가 날아든 기분이었다.


무슨 그림 하나에 새 한마리가 날아들었대?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가슴 속으로는 자연의 생명 하나가 깃든 거다. 그렇게 새와 함께하던 어느날, 부산의 유진화랑에서 열린 안정환 개인전 '자연 이야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극사실주의 작가인 안정환 작가의 작품은 늘 검색을 통해 눈팅하고 있던 중이었다.


뭐랄까.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바로 안정환 작가의 100호 200호 대작을 거실에 거는거였다. 거실에 거는 순간 집이 숲으로 바뀔 거 같다는 생각에. 하지만 당장 집도 좁고 호당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터라 대작은 접고 가능한 선에서 작품을 찬찬히 돌아봤다.


눈앞에 딱! 들어오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태종대의 파도'라는 20호 작품으로 숲으로만 둘러싸인 작품 중에 유일하게 바다가 담긴 작품이었다. 숲 시리즈 전에 안작가의 모티브가 바다였다고 한다. 왠지 이 작품을 집에 두면 집이 파도 치는 바다가 될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집으로 모셔온 안정환 작가의 작품이 나의 첫 컬렉션이 되었다.

안정환 작가의 태종대의 파도


그리고 이어 부산대 복합문화에술공간 머지에서 열린 김우성, 박경효, 이하 작가의 삼풍백화전은 깜짝 놀랄 작품의 세계로 이끌었다. 풍자라고 하기에도 쎈, 영혼 가출 수준의 작품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 이하 작가의 '내 라떼 누가 쳐먹었니'라는 20호 작품을 컬렉션했다. 다소 거실에 걸어두기에는 좀 민망하지만, 그래서 결국 드레스룸 한 구석에 자리하게 되었지만. ;;


작년에 그렇게 2개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올해 가장 눈에 들어온 작품이 바로 발달장애 청년 작가 황성제 작가의 작품이다. 세상과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장애 청년이 로봇과의 교감을 통해 친구가 되어 함께 걸어가는 길을 담은 작품들이 눈길을 확 끌었다. 20호 작품인 '내짝꿍'을 10호로 부탁드렸고 그렇게 내짝꿍의 10호 시리즈 4개가 탄생되었다. 그중에 하나를 컬렉션하고 곤충시리즈 하나도 함께 컬렉션했다.


전시가 끝나면 받게 될 내짝꿍은 벌써부터 아들이 거실로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형형색색의 로봇들과 내짝꿍이 될 그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당분간 마지막이 될 컬렉션은 바로 이한정 작가의 작품이다. 한지에 산수화를 묵묵히 담고 있는 이한정 작가는 작품을 보는 순간 은은한 자연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된다.


얼마전 부산 해운대 더베이101에서 열린 아트인더베이 아트페어에서 컬렉션하게 된 이 작품은 수많은 작품 중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들어온 자연 그대로의 작품이었다. 몇 작품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컬렉션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속성이었다.

황성제 작가의 내짝꿍 곤충시리즈, 이한정 작가의 숲


볼수록 마음에 드는 작품이 첫번째지만 이 작가가 언제까지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바로 지속가능한 가치의 미래를 알려준다. 이한정 작가가 걸어온 길과 작품 면면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들었다. 작업이 힘들어서 어려워서 관둘 분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이 지속성에 대해서는 예술을 잘 모르는 나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다.)


그렇게 작품들이 거실에 걸렸고 조명보다 더 환한 예술의 빛을 선사해줬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내 집에 작품 몇개를 걸어 더 밝고 기운이 나는 분위기를 내자라는 모토에서 시작된 평범한 직장인의 소소한 컬렉션. 그래서 야, 너두 아트테크 할 수 있다는 거다. 특별한 누군가가 하는게 아니라 누구든 할 수 있는 '예술을 향유하는 기회'라는 거다.


오늘도 퇴근 후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파도와 산, 그리고 곤충과 로봇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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