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넉넉한 형편의 살림이 아니었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전학을 갔던 그 동네엔 친한 친구가 없었고 옆집 아이와 처음 인사를 하고 그 집에 놀러 갔던 날이 떠오른다. 친구의 어머니는 간식이라며 사이다와 전(부산에서는 지짐이라고 한다.)을 내오셨다. 노란색 전이 맛깔스러워 보였는데 한 조각에 입에 넣자마자 그만 사르르 녹았다. 대체 이게 무슨 전이야? 부추(부산에서는 정구지라고 한다.)전이나 김치전은 먹어봤어도 이 노오란 전은 대체 뭐람. 이 달달하니 사르르 녹는 이 맛, 대체 무엇?
친구와의 첫 어색한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와선 엄마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옆집 친구네에서 먹은 전이 아무래도 너무 맛있고 달던데 설탕을 넣은 전임에 틀임이 없다고. 밀가루에 설탕을 넣어 전을 부쳐 달라고 졸랐다. 어떤 전인지도 모르는 엄마는 조르는 아들 덕에 허둥지둥 밀가루에 물과 설탕을 넣어 부쳐내니 허여멀건 넙적한, 니 맛 내 맛도 없는 정체불명의 설탕전이 만들어졌다. 이게 뭐야, 그 맛이 아니잖아. 한 점 입에 넣은 난 뱉어냈고 몽땅 휴지통 행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설탕전의 정체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그때였다. 친구의 어머니가 전을 부쳐 주셨고 초등학교 때 먹었던 그 노오란 빛깔에 사르르 녹는 설탕 맛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즉시 친구의 어머니께 이 전의 정체를 여쭈었고 그제야 호박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애호박이 아닌 늙은 호박이라는 걸. 그 순간 설탕전을 리셋하고 늙은 호박전으로 리부팅했다. 언젠가 이 전을 꼭 스스로 해 먹는 날이 오리라 다짐하며.
사실 대학에 가서도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굳이 늙은 호박을 사서 속을 파내고 껍질을 벗겨내 속살을 채 썰어 밀가루와 물을 반죽해 구워내기란 쉽지 않았다. 어쩌면 게을러서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은 흘러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 농장에서 수확한 늙은 호박을 보며 아차! 하고 떠오른 추억의 늙은 호박전이 생각났다. 호박전을 염두에 두고 호박을 재배한 건 아니지만 10가지도 넘는 수확물 중에 만만한 호박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현관문에 큰 호박을 두면 좋다는 말이 있어 오래 놓아두던 늙은 호박을 아내와 함께 들어 신문지 위에 올렸다. 겨우 반토막을 내고선 다듬고 또 다듬어 채 썬 호박에 밀가루를 넣어 아련한 추억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설탕도 조금 넣어 부쳐냈다. 뜨거운 전을 호호 불어 입에 넣는데 그만 실신할 만큼 달달하다. 달달하면서 조금은 짠맛이 느껴지는 단짠의 신세계, 바로 늙은 호박전이었다.
부산 선동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늙은 대형 호박들
오래 보관하기 힘들어 쪄낸 호박을 냉동 보관한다.
치명적인 맛의 늙은 호박전
무턱대고 설탕전을 만들어 달라며 졸라대던 아이가 이제는 호박을 수확해 호박전을 만들고 있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세상을 떠난 지 벌써 많은 해가 지난 어머니 다음 제사상에 꼭 이 늙은 호박전을 올려드려야겠다. 설탕전 아니 호박전을, 세상에서 가장 달달하면서도 맛있게 짠 아들이 만든 늙은 호박전을 말이다. 나를 업어 주셨던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 내가 업어 드리게 되었고 이젠 더 이상 업어드릴 수도 없음이 가슴 아프다. 이 무한 달달의 늙은 호박전으로도 위무할 수 없는 깊은 상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