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결연에 찬 선언을 했다. "다시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키울래!" 그렇게 우리 부부는 육아가 아닌 '키움'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 와인이라도 한 잔 해야 할 판이다. 세 살부터 시작된 키움에 대한 아이의 열망의 불씨가 드디어 꺼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세 살 무렵 마트에 장을 보러 함께 간 아이는 마트의 수족관 코너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유독 아쿠아리움이나 해양박물관을 좋아했던 아이지만 물고기라면 환장을 했다. 열대어는 키우기 어렵다고 하니 금붕어라도 키워야겠단다. 못 이겨 결국 유리 수족관을 사게 되었고 자갈부터 이것저것 키움의 첫발을 내디뎠다.
마트에 가는 이유가 수족관 코너인 아이 때문에 갈 때마다 또 못 이겨 열대어마저 사게 되었지만 고난도의 키움 스킬이 부족한 탓에 몇 마리가 죽고서야 열대어는 아이에게도 감당이 안 되는 종으로 분류되었다. 금붕어를 3년간 열심히 키웠으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새삼 대견하다. 아이가 아니라 아내가 말이다.
금붕어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파트 뒷산의 등산로 시냇가에서 버들치를 잡아 집으로 데려오거나 달팽이를 키우기 위해 화분을 키우기도 했다. 장수풍뎅이는 기본 사슴벌레까지 숨 가쁘게 키워오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좀 잠잠해지는 듯했다. 영어학원에서 분양받아온 마리모를 비롯해 거북이 세 마리까지 집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 무렵 농사가 시작된 농장에 주말에 가게 되면 곤충을 잡느라 밭을 온통 뛰어다닌 아들, 메뚜기를 비롯한 여치, 매미 등 곤충 수집통에 갇힌 수많은 곤충은 겨우겨우 달래고 얼러 아이들이 있던 곳에 그대로 두고 올 수 있었다. 우리 아이 제법 컸구나 싶어 이것마저 대견해지던 날이었다.
기장 리조트에 여행을 가면 꼭 게를 잡아서 숙소 안으로 데려왔다. 다대포에 마라톤을 하러 갔던 날엔 맛소금을 챙겨가 갯벌에 뿌려 키조개를 잡아왔다. 아파트 뒷산에서 잡아온 버들치는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있던 곳으로 보냈고 기장의 게는 바닷가로 키조개는 요리를 해서 먹었다. 어떻게든 살려주고 쓰임이 있게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녀석들도 있었다. 바로 거북이였다. 한 마리씩 생을 마감하더니 결국 마지막 녀석까지 떠나보내자 다시는 생명을 집으로 들이지 말자며 다짐을 했다. 하지만 작년 봄, 나와 아이는 큰 용기를 내어 아내 몰래 도마뱀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회사 근처의 파충류 샵에서 레오파드 게코 도마뱀과 케이지, 먹이, 용품들을 사 오는 것이었다.
토요일 오전 아내가 일을 하러 간 틈을 타 나와 아들은 그 프로젝트를 감행했고 집으로 들이던 순간 마침 집으로 귀가하던 아내에게 발각되었다. 겨우 집으로 데려와 케이지에 도마뱀을 담았더니 아내의 폭풍 잔소리가 회오리쳤다. 허리케인도 이런 허리케인이 없을 지경. 아이와 난 겨우 도마뱀의 이름을 파인이(너무 좋아 fine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로 짓고 넥스트 스텝을 고민했다.
파인이의 먹이가 밀웜이다 보니 사실 도마뱀인 파인이 보다 더 징그러운 게 바로 이 꿈틀꿈틀 대는 밀웜이다. 이걸 핀셋으로 집어서 파인이에게 먹이는 것 자체가 솔직히 내게도 곤욕인 셈. 아이를 위해선 그 곤욕도 참을 수 있어 함께 감행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아내의 저항이 너무 거셌고 절대 집에선 키울 수 없으니 반품을 하든 아무에게나 갖다 주라는 아내의 어명이었다.
아이와 골똘히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 잠시라도 외갓집에 맡기자.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외할아버지는 이해해주실 거라는 것. 그렇게 부랴부랴 케이지와 파인이를 챙겨 호다닥 외갓집으로 달려갔다. 물론 외할아버지의 표정 역시 스마일 하진 못했지만 손주 녀석의 간절한 부탁엔 스르르 넘어가 주셨다. 2주간의 설득 끝에 아내는 파인이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우린 넷이 한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도마뱀을 손에 넣은 아이는 한 달이 채 가기도 전에 관심권에서 파인이가 멀어져 버렸다. 결국 아내와 나의 몫이 되어버린 후덜덜한 도마뱀 양육. 밀웜을 잘 먹지 않아 퇴근길에 귀뚜라미를 사서 핀셋으로 겨우 먹이는 거의 사투에 가까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던 중 급격하게 먹이를 거부하는 파인이를 보며 걱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라인의 탑층에 살고 있는 지인이 생각났다! 10마리가 넘는 도마뱀, 5마리도 더 넘는 거북이, 앵무새마저 키우고 있는 사실상 동물원에 가까운 그분의 집이 생각났다. 급하게 SOS를 쳤다. 결국 파인이는 그 집으로 보내졌다. 친구들과 함께 살면 좀 나아질 거란 희망에서였다.
파인이를 애도하며, 파인이 사진을 올리는 건 파인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아 이미지 사진으로 대체한다. @ pixabay
파인이가 떠난 지 석 달이 지난 어제 파인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몸속에 기생충이 퍼졌고 그 충이 결국 한 친구에게도 전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으로 오기 전부터 기생충이 있었는지 와서 생긴 건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일순 우리가 가족은 울컥했다. 우리가 데려온 생명이 맞는 죽음을 더 이상은 마주하지 말자는 암묵의 끄덕임을 나눴다. 그리고 아이가 외쳤다. "다시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키울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파인이와의 아련한 추억으로 인한 아픈 가슴의 상처다. 다시는 집으로 생명을 들이지 말자는 다짐보다 파인이가 더 좋은 세상에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그 무엇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파인이를 통해 배우게 된 귀중한 날이었다.
팀원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노령의 반려묘, 쿠쿠마.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키우고 싶어하는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