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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Oct 15. 2022

좋은 세입자는 하늘이 내린 복

공실로 골치 아팠던 사무실용 오피스텔에 임차인이 들어온지도 1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너무 다행이라며 계약을 했던 날 아내와 근사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던 기억이다. 대출이자를 월세로 다행히 방어할 수 있겠지? 하며 힘차게 닭다리를 뜯었다.




석 달이 지날 무렵부터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월세 입금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일단 당황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소심한 탓에 문자메시지로 정중히 월세 입금을 부탁했다.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난 시점, 그러니까 네 번의 월세를 내지 않은 상황에 다다르자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월세는 그렇다 쳐도 관리비를 단 한 번도 내지 않는 건 좀 상식 밖이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보다 평수가 큰 오피스텔이라 한 달 관리비가 최소 20만 원은 넘는데 이걸 어쩌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관리비에 대해서도 소심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랑곳하지 않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적은 보증금이었다. 500만 원이라는 보증금으로는 1년 치 월세, 관리비를 모두 제한다 해도 마이너스에 마이너스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온라인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된 내용증명 만들기.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팩트를 서술하고 이행이 어려울 시에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만들어 발송했다.


사업장 주소가 오피스텔로 되어 있는 데 있어도 안 받는 건지 없어서 그런 건지 계속 폐문부재로 반송되어 돌아왔다. 그런 상태로 월세와 관리비가 6개월째 밀리자 속이 타기 시작했다. 드디어 법무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그리고 생애 첫 명도소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소송이란 게 진행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행되었을 때 그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라 선뜻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업장 주소가 아닌 대표의 자택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 계약 당시의 사업자등록증 상의 대표가 바뀌어있었다. 다행히 내용증명이 도달했고 동시에 사무실의 단전, 단수를 관리실 협의 하에 시작하게 되었다. 그제야 두 달 치 월세와 관리비를 조용히 입금한 세입자.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세입자는 그 이후의 월세와 관리비를 아주 그냥 까마득히 잊고 연락조차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에도 아무런 반응 없었다. 급기야 명도소송 소장이 접수되었고 법원 출석 기일이 정해졌다. 어쩐 일인지 그 시점 세입자에게 자발적으로 연락이 왔다.


독촉 아닌 독촉을 할 때는 꿈쩍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 소송까지는 할 줄 몰랐다며 내심 섭섭해했다. 그동안 대체 뭘 한 거니. 너덜너덜 상해버린 속은 보이지도 않는 거니. 통화를 하곤 오히려 털썩 허탈감이 몰려왔다. 자신이 불리해지자 세입자는 1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적극적인 태도 보이기 시작했다.


잔뜩 밀려있던 관리비를 일시에 해결했다.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시나? 했는데 보증금을 제한 잔여 월세를 10일이 넘도록 입금해 주지 않았다. 소송 취하를 간절히 부탁하던 세입자였지만 잔여금 입금은 하지 않고 법정 출석 기일은 다가오고 급기야 출석을 맘먹었던 그날 아침,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툭! 입금이 되었다.


그리고 문자 한 통 달랑 왔다. 그날 곧바로 소 취하 서류를 법무사 사무실에서 받아 법원 민원실에 제출했다. 아,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이 한통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거였어. 또한 허탈하면서도 속이 시원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임대를 낸 이틀 만에 세입자가 연결되어 새로운 계약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화가가 꿈이었던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을 위한 화실로 쓰겠다는 부부다. 20년이 넘도록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통 큰 아내의 통 큰 결정이었다고 한다. 우리 부부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이셨지만 어쩌면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금실이 좋았다. 그렇게 1년의 기나긴 속앓이가 끝이 났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근사한 저녁을 사주고 싶었다. 조금은 늦은 시간이었다. 결국 걷고 또 걷다가 찾은 집이 칼국수집. 무려 만두 칼국수! 결국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메뉴의 집으로 발길이 닿고 말았다. 아내는 평소보다 더 맛있게 칼국수를 먹어주었다.


하나하나 잘 챙기지 못하는 남편의 빈틈을 꽉 채워 함께 드라이브해 나가는 우리 부부. 부동산 하락기로 새로운 플랜을 짜야하는 상황에서 답 없는 불만보다 끊임없이 긍정의 해답을 모색하는 아내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다음엔 칼국수보다 더 맛있는 근사한 저녁을 함께해야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표현이 서툴렀던 나를 반성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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