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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Oct 23. 2022

주말 1박 2일, 아내와 아이가 사라졌다!

그래서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것들

아내와 아이가 주말 1박 2일 경주 역사여행을 떠났다. 결혼 12년 차, 가족이 함께 떠나지 않고 이렇게 완벽히 홀로 남겨진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혼자 밥 먹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걱정도 되었고 한편으로 묘한 설렘도 있었다. 주말에 일을 하지 않도록 주중에 최대한 업무를 끝내 놨다. 뭘 하면 좋을까?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것들]

1. 맘껏 브런치 글을 쓸 수 있다.
2. 맘껏 TV를 볼 수 있다. 옛날 노래도 들을 수 있다.
3. 맘껏 맥주를 마실 수 있다.
4. 맘껏 임장을 갈 수 있다.
5. 맘껏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전날 회식으로 무척이나 피곤했던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경주로 떠나보내고 집으로 들어와 처음 한 일이 바로 설거지와 청소다. 아내가 아이를 학교 보내면 맨 처음 할 일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서둘러 앉아 냉큼 브런치 글을 썼다.


주말에 새벽에 깨어나 브런치 글을 쓰고 있으면 늘 가족 눈치를 보게 된다. 노트북 키보드를 토닥토닥하는 소리, 부스럭대는 소리에 민감한 아내가 혹여 잠에서 깨지나 않을까, 잠을 깨고 나오면 새벽부터 돈도 안 되는 브런치 글을 그렇게나 열심히 쓰냐는 화살이 돌아온다.


정리해둔 생각들을 토닥토닥 춤을 추듯 글을 끝내고 오늘 처음으로 부산, 경남권을 벗어난 장거리 임장 약속을 위해 온천장으로 향했다. 나의 최애 분식집 하늘이집에서 추억의 떡볶이를 영접하고 가기 위해 조금은 일찍 서둘렀다. 약속시간은 다가오고 가게는 오픈 전이라 결국 먹지 못하고 돌아와 너무 아쉬운 순간.


부동산 경매에 심취한 한 지인의 차에 올랐다. 맥콜 한 캔으로 목을 축이고 출발했다. 하필 주말, 가는 곳곳 암초였다. 도착하기까지 3번의 교통사고를 목격했고 사천에 들어서기 직전부터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교통 체증에 눈을 들어보니 사천 에어쇼라는 깃발이 오버액션으로 펄럭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진주냉면 잘한다는 하주옥에 겨우겨우 도착해서 늘어선 줄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대기표를 뽑고 지금 부른 번호를 보니 앞 대기팀이 125팀. 하아.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사이 보기로 한 토지를 향해 달렸다. 삼천포항 바다가 속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보물 같은 토지였다.


마을, 작은 군부대, 그리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에서 작은 사찰까지 조금은 높은 곳에 위치해 불편해 보일 수 있지만 멀리 바다 보이는 전원주택, 펜션부지로는 딱이었다.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어떤 메리트가 있을지, 향후 매입하게 된다면 어떤 내일이 그려지는지, 샅샅이 따져보고 꿈을 꾼 후 다시 하주옥으로 향했다.


1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대기 순번은 그러고서도 앞에 15팀이 남아있었다. 사천 에어쇼 때문에 이 정도의 대기가 아닐까 위안을 하며 번호 호출을 기다렸다. 드디어 순서가 되었고 회비빔냉면과 물비빔냉면을 주문했다. 곧이어 세팅된 샐러드와 왕만두 두 알. 와아! 이게 기본찬이라니. 냉면을 입에 한입 넣고는 길었던 대기 시간은 말끔히 잊혔다.


고명으로 올려진 육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아낌없이 쏟아부은 소스와 제주산 메밀로 만들었다는 메밀면까지. 육전을 별도로 주문했다면 포장해서 가져왔어야 할 판. 세상에 가게 주차장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굉음과 함께 에어쇼가 한창이다. 행사장까지 가지 않고 사천 어디서라도 관람이 가능한 에어쇼라니. 오늘 사천에 사람이 가득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태어나 처음 마주한 에어쇼에 입이 떡 벌어졌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해 버킷리스트였던 라면을 먹고 쉬었다 넷플리스를 열었다. 보고 싶었던 시리즈를 두 편을 보고선 그만, 그만 잠들어 버렸다. 아내가 준비해둔 안주도 맥주도 먹어보지도 못한 채...


평소 주말 새벽 기상의 루틴을 깨고 느지막이 일어나 귀차니즘의 정석대로 대충 만든 폭탄 계란밥을 한 끼 뚝딱했다. 그리곤 지금 이렇게 브런치 글을 마구마구 쓰고 있다. 오후 늦게 도착할 아내와 아이, 남은 시간은 뭘 할까 하다 아무런 계획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1분 1초도 계획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아온 나 자신을 위해 이 순간만큼은 그냥 멍을 때리든, 책을 읽든,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하고 싶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의 육아를 함께하는 엄마들의 고충도 많겠지만 아빠들의 고충 또한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게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은 대체 언제일까? 그게 오기는 하는 걸까? 더 큰 스트레스일 아내를 보면서도 내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던 기억이다.


오죽하면 육아 아빠들에게 화캉스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집에서 유일하게 육아를 벗어날 수 있는 화장실에서의 5분의 자유, 그걸 일컬어 화캉스라고 한단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며 그 힘들었던 육아의 순간들도 추억이 되었지만 이젠 새로운 교육의 허들이 기다리고 있다.


직장으로, 육아로, 너무나 힘든 나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을 응원한다. 아이의 꿈을 묻기 전에 우리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 어떤 꿈을 꾸었었는지, 그 꿈이 아직 유효한지, 그 꿈을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꿈을 향해 달릴 건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남은 시간 뜨겁고 치열하게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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