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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Nov 25. 2022

번아웃에 대처하는 직장인의 자세

난 안 그럴 줄 알았다.

OO 과장에게


부산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늘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OO 과장.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난 최근 두 번의 만남 속에

흐트러짐 없는, 배려의 모습에 많은 감탄을 했네요.

누구보다 자신의 위치에 대한 포지셔닝을 잘하고

그에 맞춰 똑 부러진 스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

요즘 같지 않은 경민 과장을 MZ들이 보고 배웠음 했네요.

그런 OO 과장에게 인생을 조금 더 산 형(꼰대 아님 주의)으로서 주제넘는 잔소리 몇 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은 있는 그대로 참지 말고 보여주세요.

자리가 자리인 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자기 관리,

표정관리를 해야 할 OO 과장일 텐데

회사에서든 회사가 아닌 곳에서든

그 사이사이 정말 화가 나고 치밀어 오를 거 같은 상황에선

말하기 편한 사람에게 힘들다는 말 한마디는 꼭 하세요.

스스로 꾹 참고 묻어뒀다간 화가 너무 숙성될 수 있으니.


1주일에 술자리가 무척 많다고 하던데

일상에서 꼭 OO 과장의 중요한 우선순위를 생각하세요.

1. 나 자신

2. 내 가족

3. 친구들

4. 회사

가장 후순위를 어쩌면 가장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결국 OO 과장에게 남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건강을 꼭 챙겼으면 합니다.


너무 회사에 모든 걸 올인하진 마세요.

회사는 회사의 영역만큼 그리고

OO 과장의 일상은 과장님 것으로 채워서 균형을 잘 맞춰갔으면 해요.

한 곳으로만 올인하다 보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게 취미가 되었든, 부캐가 되었든, 재테크가 되었든,

그 어떤 거라도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그 무언가 하나쯤은 꼭 가지세요.

짧게나마 2년 후, 5년 후

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상상하세요.

그리고 그걸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메모해 두세요.

거창한 플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향 정도는 알고 사는 게 중요하니깐.


아침에 일어나 많은 생각이 났는데

쓰다 보니 이 세 가지만 떠오르네요.

더 쓰면 꼰대 인증될까 봐 여기까지 합니다. ^^

근데 과장님.

위의 글을 읽어보니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네요.

결국 위의 이야기들은 잔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우리의 숙제인 거 같아요.


내 나이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도록 드리는

뻔-한 팁이지만 한 번쯤 가슴에 새겨 실천하세요.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만나게 되면

그날보다 더 평온한 모습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했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시작하시고 잘 챙기세요.

몸도 마음도.


2022. 11. 22.

파란카피로 부터




이 편지를 보내고 딱 1주일 후인 오늘, 내가 아끼는 OO 과장에게 했던 충고를 내가 고스란히 받아야만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탈탈 멘탈이 털린 날이다. 지금 해야 할 일들도 감당이 힘든데 그 배가 되는 업무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1개의 공도 받기 힘든데 10개의 공들이 나를 집중 타격하는 날이다.


18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상사에게 울분에 찬 포효를 했다. 사실 포효도 아니다. 미세한 떨림 가득한 하소연에 가까운 소리들을 잠시 쏟아내고 그 길로 사무실을 나와 회사 앞을 걸었다. 흥분한 마음을 식히지 않으면 불 타오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30분을 걸었다.


30분의 걸음 속에서도 10통이 넘는 업무 전화가 쏟아졌다. 안 받아야지 하면서도 받게 되고 그 통화 속에서도 또 일에 빠진 나를 발견하곤 한숨이 쏟아졌다. 18년 어느새 몸과 마음이 습관적으로 기억하고 반응하고 '일'에 대한 나의 일상적 번아웃을 목격했다.


회사로 돌아와 아무런 일도 없는 듯 다시 일에 매진했지만 지금 이 순간 도대체 난 어디쯤에서 나라는 이름으로 숨 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늘 한결같던 이 자리가 낯설었다. 그리고 아무런 솔루션을 찾고 싶지 않았다. 적당한 자기 합리화 자체가 싫었다. 그냥 화가 난 상태, 그 모습이고 싶었다.


상사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거나, 일에 대한 집착을 좀 덜어낸다거나, 회사와 내 생활의 분리가 필요하다거나, 친구의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하다거나 하는 진부한 처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화난 채의 나로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이 순간, 나를 깊은 번아웃에서 구조해줄 사람은 오직 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복잡한 것들을 단순하게 나열하기, 그 앞에서 심플해지는 나를 구출하기. 마치 인형 뽑기와 같이 오랜 시도 끝에 툭하고 걸려 떨어진 운 좋은 인형처럼 가까스로 탈출했다. 결국 모든 원인은 내 욕심에 있었음을. 강박에 있었음을 스르르 내려놓음과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다 해낼 순 없고, 다 잘 해낼 순 없다.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더 잘할 수 있는 효용과 효율을 따져 합리적으로 할 수밖에. 잘 안될까 봐,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미리 걱정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번아웃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걱정 다이어트였다는 것을.

설사 아니더라도, 아니라고 바로 이야기하기보다 한발 물러나 맞다고 하고, 다시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혜로운 프로세스도 필요하다.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상사라면 어쩔 수 없다. 아니게 돌아가게 둘 수밖에. 더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내려놓으면 어느새 번아웃을 탈출한 나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번아웃의 후유증에서 완벽히 탈출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스스로 완벽한 탈출이라며 우기고 있는 걸지도. 다행히 서둘러 주말이 왔다. 주말도 역시나 여유가 없을 예정이지만 조금은 일에서 벗어난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완전히, 완벽히 다른 나 자신과의 시간을.

번아웃 탈출에 도움이 되는 황성제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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