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술자리가 많아지는 연말, 달력 빼곡히 채워진 술자리에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가졌던 술자리를 생각하면 셈 자체가 불가할 지경. 특히나 회식이 잦은 부서이기에 그 횟수와 깊이는 사뭇 남다르다.
이렇게 잦은 술자리를 가지면서 내게 생긴 불문율 하나가 바로 집에서 마시는 혼술, 홈술 금지였다. 평소 술자리도 많은데 집에서까지? 그것만큼은 절대, 절대로 해선 안 되었고 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 술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어 발견한 캔 맥주 하나 정도는 스스로의 묵시적 허용.
이런 내가 요즘 들어 기존의 약속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 가끔 혼자만의 막걸리 타임을 즐기는 루틴을 가지게 되었다. 줄인다 해도 얼마나 줄이겠냐만 그 속에서 그야말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건 생각보다 작고도 큰 행복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육아를 하며 문득문득 돌아보면 나를 위한 시간이 있었던가, 나만을 위한 나만의 시간이 있었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위로와 배려가 있지만 결국 나를 온전히 무장해제시키는 존재는 나밖에 없다는 걸 무척이나 늦게 알게 되었다.
아이가 아플까 걱정하고, 회사의 일에 빈틈이 있을까 조마조마하고, 누군가와의 관계에 소원함이 있을까 되짚어보는 순간순간, 그 수많은 강박으로부터의 굴레는 결국 나 스스로 만들어 나를 괴롭히고 있던 거라는 걸 말이다.
내 삶 속에 나는 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지금 계획했고 실행해 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내 삶을 위한 길이 맞는지 오직 나만을 위한 작은 술상을 차려 홀로 막걸리를 마시며 돌아본다.
오직 이 시간만큼은 나를 위한 생각들로, 나를 위한 한잔의 위로로,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맛있는 한 점의 안주로 상을 준다. 자책의 순간들도 있지만 이 오랜 시간을 묵묵히 버텨줘서 고맙고, 살얼음판 같은 지금도 부디 깨지지 않는 얼음 위를 조심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그릇에 김치 달랑 담아서 막걸리 한잔할 수도 있지만 나를 위한 이 시간만큼은 진심으로 나를 위해 잘 차려진 심플한 혼술 플레이팅으로. 잘 걸어가기 위해선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생각의 굴곡들을 평탄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좋은 책 속에서 그 답을 찾는 방법도 좋지만 내 속에 응어리진 외로움과 억울함, 그 다양한 형태의 화를 한 잔의 술로 씻어 내리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자주는 아니고 아주 가끔, 내가 나 스스로를 잊어버릴 것 같은 순간에, 잃어버릴 것 같은 그날에.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혼술 타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