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된 인연이니 벌써 32년의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다. 각자 다른 대학을 갔고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지만 여전히 우리 여섯 명은 학교 식당에서 도시락을 까먹던 그 시절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우린 서른 살을 기념해 남도여행을 다녀왔고 하나둘 결혼을 하다 나를 마지막으로 모두 품절남으로 결혼의 늪에 빠졌다.
대단할 것도 없는 우정이다. 대학시절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친구의 가게를 찾아가 술을 한잔 하며 주문한 파전, 함께 자리했던 친구가 왔다갔다 직접 부쳐내온 그 파전은 일부를 제외하곤 시커멓게 타버렸다. 일제히 젓가락이 오고 갔고 유일하게 타지 않은 일부분만 남겨진 채 식어버려 먹지 못했던 그 한 조각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배려하며 티 내지 않고 32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었기도 했겠지만 우린 서로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했을지 몰라도 약속이나 한 듯 빌리거나 빌려주지 않았다. 돈이 아닌 것들은 기꺼이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며 지내왔다.
술을 권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지 않늗 친구들이다. 술을 따라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 따라먹는다. 생각보다 주량이 센 편인 친구들이라 마시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마신다. 물론 한 친구는 술을 아예 먹지 않아 물을 먹거나 음료수를 먹지만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안주를 양보한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 내게도 술을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내가 알아서 마신다. 그래서 술자리가 더 즐겁다.
계산을 하지 않는다.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평소, 어떤 만남이나 자리에서든 어떤 이득이 있을까? 어떤 기회가 있을까? 어떤 혜택이 있을까? 따지지 않는다.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늘 그 자리에 있는 친구로 있는 듯 없는 듯 산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나면 단체채팅방에서 안부를 묻고 콜? 한마디로 되면 보고 안되면 안 본다. 그렇게 우린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는 그대로 만난다.
보이지 않게 응원한다.
각자의 가정이 있고 각자의 아내도 아이들도 있다. 각자의 직장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각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부산 사람 특유의 무덤덤함을 혈액형처럼 지닌 채 속으로 조용히 묵묵히 서로가 잘되기를 기도하고 응원한다.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도 더 무덤덤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보듬는다.
우정에도 시대변화가 있겠지만 여하튼 우린 이렇게 지낸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평생친구로 함께한다. 정말 마음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 그 속에서 위안을 얻으며 힘을 낼 수 있는 친구들. 바쁘다는 핑계로 가끔 만나는 자리에도 잘 가지 못하는 내게 외려 고생한다 말해주는 친구들. 여전히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그때 그 마음 그대로, 계산하지 않아 평생 함께 갈 내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