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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28. 2023

학폭 거리가 안된댔지만 학폭 접수를 했다

주문했던 음식이 나온 상황에서 받은 전화였다. 맛있기로 소문난 집의 물회였지만 몇 술 뜨고 먹지 못했다. 그 아이의 엄마가 기어이 학폭 접수를 했다는 통화를 마치고 식당에서 걸어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늘이 캄캄했다.


오후, 간신히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상황을 확인했다. 아이에게 상황에 대해 물었고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사과하라고 했고 그 아이도 사과를 받아들여 오늘 잘 놀았다고 했다.


학폭이 접수되고 선생님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생겨 황당한 듯했다. 선생님께도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생각에 돌입했다.


아이는 집에서 엄마가 경찰서 가야 하는 거냐고 울었고, 사안에 따른 너의 책임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냐고 울었고, 그 친구는 나와 놀아야 하는데 못 놀면 어떡하냐고, 되레 그 친구를 걱정하며 울었다. 너무 속상했다. 이 상황 자체가.


다음날 체험학습으로 계획했던 가족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다. 도저히 이 기분으로는 떠날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잠시 바닷바람을 쇠러 갔고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이대로 있을 것인가. 상황을 뒤엎을 것인가.


피해를 입었다는 아이의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고 부모로서 아이를 잘 가르치지 않은 것에 대해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보냈다. 잠시 후 그 아이의 엄마는 메시지를 확인했고 띠링! 파일 하나를 보내왔다.


당시 우리 아이가 때렸다는 상황을 목격한 한 엄마의 통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이었다. 그 아이가 많이 맞고 있어 놀랐다. 앞을 보진 못했지만 아이가 맞는 걸 봤다. 그 엄마는 학폭 접수를 하면 증언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그건 못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나서지는 않겠다고 하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었다.


그 파일과 함께 보낸 메시지는, 이 녹음본을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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