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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29. 2023

조카의 카페 알바, 브런치로 돌아오다

악기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인 조카, 태어나 단 한 번도 알바를 해보지 않았던 조카가 생전 처음, 알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들은 일제히 내향적인 조카를 걱정했다. 서빙을 한다면 무거워서 할 수 있을까, 편의점은 진상 고객 응대를 잘할 수 있을까? 혹여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포지션이면 음식이라곤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아이가 가당키나 할까?


하던 차에 조카가 처음 알바 면접을 보러 간단다. 그것도 카페에! 커피의 ㅋ자도 모르는 조카를 걱정했는데 면접보고 바로 합격을 했단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 서빙도, 바리스타도 아닌 주방에서 브런치를 만드는 포지션으로 말이다. 가족 단톡방에서 다들 실화냐며 환호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기를 석 달, 3주도 아닌 석 달이 지났다. 다들 1 주일 하면 힘들다고 관둘 거야 라며 마치 정해진 운명인 듯 무심히 지나친 시간이 벌써 석 달. 1주일에 3일 오전만 출근이지만 그래도 대견했다. 처음엔 무척 피곤해했다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한 모양이다.


대체휴일인 오늘 조카가 집으로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가족을 위한 핸드메이드 브런치 테이블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다. 그것도 삼촌인 나의 생일에 말이다. 프렌치토스트, 치아바타 샌드위치, 에그인헬 3가지 브런치가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뭉클했다. 늘 아이로만 봐왔던 조카가 스스로 장을 봐서 아침부터 준비해 만든 음식이라니. 그것도 이렇게 정성스럽게라니. 세상에 무심히 만든 브런치가 이렇게 맛있을 일이냐고.

올해 초엔 조카가 조카의 어린 시절 삼촌과 함께했던 추억의 사진과 지금 나의 아들과 나의 사진을 연대기 앨범으로 만들어 선물해 줬다. 왈칵 눈시울이 촉촉해졌던 기억이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감동을 선물한 날이다. 여린 성격이라 늘 걱정했던 조카가 알바를 하며 음식을 만들고 적지만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요즘이었다.


"삼촌, 저 그만둘까 생각해요."


최저시급도 괜찮지만 갑자기 한꺼번에 주문 오더가 왔을 때 허둥댈 때마다 너무나 눈치를 주는 순간이 두렵다는 거였다. (조카야! 사회 생활하다 보면 한꺼번에 10가지 일이 떨어질 때가 있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꼰대 삼촌이 되기 싫어 일단 멈춤.)


그리고 최근 클레임을 건 한 손님으로 큰 충격을 받았단다. 프렌치토스트에 곁들여 나오는 스크램블이 니맛내맛도 아니라고 했단다. 급기야 카페 사장이 다시 만들어 내었지만 그마저도 스크램블의 맛이 원하는 맛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 결국 프렌치토스트 비용은 받지 않기로 하고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서비스로 제공하고 나서야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손님이 가고 나서 보니 스크램블을 반이나 먹었더라는 것. (조카야! 사회 생활하다 보면 그보다 더 한 황당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단다.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니야.라는 말이 목까지 넘어왔지만 역시 꼰대 삼촌이 되지 않기 위해 참았다.)


조카를 아껴서인지 당장 그만두라는 소릴 했다. 어쩌면 좀 더 편한 알바 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잦은 이직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MZ의 밈 같은 트렌드를 돌아봤다. X세대인 우리들이라고 힘들지 않았을까, 우리라고 울고 싶지 않았을까. 다만 무모하리만큼 참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그때였기에 나를 뒤로한 채 살아왔던 거다. (또 꼰대 삼촌 출동이다.)


대학원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는 조카다. 예술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터라 다양한 삶의 길을 고민하는 조카다. 사진에 특히 소질이 있는 조카지만 날고 기는 기인들 속에 밥벌이는 될까 싶어 섣불리 그 길로 가라 하기도 두렵다. 길이 많아서인지, 적어서인지 진로 걱정이 부쩍 많아진 조카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응원할 생각이다. 잊지 못할 지금 이 순간, 핸드메이드 브런치 선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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