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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생활 12년 만에 받아 든 이혼 서류

그에게 이혼이 가져다준 선물

by 파란카피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을 해외로 보내고 기나긴 기러기 생활을 했다. 어언 12년. 평온한 일상이 시작되던 그날 아침 변호사라며 그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아내의 일방적인 이혼 요청. 이혼과 동시에 전 재산의 반을 달라는 것. 때마침 그곳에 있는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빠도 좋은 사람 만나."


그 길로 변호사를 찾았다. 아내에 대한 어떠한 정황도 갖고 있지 않은 그에게 변호사의 내린 신중한 결론은 뭘 어떻게 해도 재산의 반을 아내에게 줘야 한다는 것. 그날 진료를 끝낸 그는 백화점 명품샵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에게 빛나는 선물을 했다. 1800만 원짜리 가죽 재킷을 말이다.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그동안 해외로 송금하느라 아끼는데만 골몰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단단한 알에서 깨어났다. 해외여행은 물론 그동안 미뤘던 지인들과의 약속도 마음껏 함께했다. 아껴봐야 반은 아내의 것이므로.

@ pixabay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내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오직 아내의 변호사만이 가끔 알람처럼 연락이 왔다. 이 일을 겪으며 그는 그동안 방치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해외에 있을 아내와 아들들을 위해 일만 하느라 정작 지친 자신을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해 왔던 것.


아내가 보내온 이혼 서류가 바보 같은 그의 인생을 봉인 해제한 셈이다. 갖고 싶었던 것, 누리고 싶었던 것, 나누고 싶었던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제약을 스스로 벗어던졌다. 요즘 누구보다 재밌게, 설레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는 이제 진짜 자기 자신을 찾은 느낌이다. 물론 그 안에 더 큰 공허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상황에선 둘 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 아내 역시 그녀만의 고충이 있었을 테고 보이지 않는 외로움이 있었을 테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선 둘 다 상처지만 둘 다 살아갈 힘을 얻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혼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다.


예전보다 한층 더 밝아진 그, 그리고 그녀의 남은 인생을 응원한다. 함께에서 홀로, 그리고 더 행복한 함께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인생을 축복한다. 같이 있는 것만이 행복은 아닐 것이다.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공유하는 '우리'에서 '나'로의 변화. 그 홀가분한 그들의 축제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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