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를 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중학생 아이였다. 치열한 경쟁보단 아이들과 어울려 내신을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일반고로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전교에서 상위권 4명에게 주는 장학금도 덜컥 받게 되었다. 부모는 기쁜 마음에 그 절반을 게임 아이템을 사는데 기꺼이 허락했다.
환상이 깨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중간고사 점수가 나오자 선생님은 아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갑자기 확연히 떨어진 성적에 망연자실. 대체 뭐가 문제냐는 거다. 그리고 하나하나 따져보니 특히 수학이 엄청난 수직하강임을 알게 되었다. 이미 중 1 때 선행으로 고3 수학 과정을 마쳤던 이 아이에게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영재반 학원을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중학교도 모자라 고등학교 수학, 영어를 선행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원해서 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부모의 만족을 위한 선행도 분명 있으리라. 차곡차곡 기초를 세워서 선행 학습을 하는 학원도 있겠지만 아이와 학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소화도 채 되지 않았는데 다음 스텝의 과식을 이어가는 사례도 분명 있을 듯하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다. 이 아이에게 수학의 기초가 없어서 생긴 일. 실컷 선행 학습을 했지만 선행을 위한 선행을 하다 보니 제대로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보다 다음 스텝을 밟아가기 바빴던 탓이다. 실컷 선행을 했지만 돌아보니 쌓인 게 없는 밑 빠진 독이었던 것.
내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중학생 과정을 선행하고 있다는 것, 중학생인데 고등학생 과정을 선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뿌듯함이 될 수 있고 우월감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좋은 고등학교를 가고 내신을 잘 받고 수능을 잘 쳐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일종의 공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기고 좋아하는 아이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불행이 아닐까. 아이의 미래를 위한 거라며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게 만들었는데 잘 따라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아 극단의 상황이 생긴다면 그건 아이와 부모에게 결국 서로 몹쓸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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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것도 좋지만 자연스럽게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는 것도 좋다.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아이가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선행 학습도 좋지만 현행 학습에 더 충실하고 한발 두발 튼튼한 기초를 쌓아갈 수 있도록. 결국 그것이 탄탄한 학습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현행에 자신 있을 때 즐겁게 선행을 할 수 있는 것, 아이도 부모도 학습과 마음을 동시에 잘 다스리는 것, 그것만큼 훌륭한 원팀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