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자리였다. 계열사의 한 신입사원과 처음 함께하는 자리였다. 고깃집이었고 쌈에 오이도 곁들여 나왔다. 오이 성애자인 내가 너무 맛있게 오이를 먹는데 오이엔 입도 대지 않는 그가 궁금해 물었다. "오이, 정말 맛있는데 드셔보세요." "저는 오이를 못 먹습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세상에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이 있다니. 농담하는 건가? 꼰대 테스트를 하는 건가? 이런 첫 회식자리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려 노력하는 터라 아, 그래요 하고 고기를 먹는데 옆에 있던 그의 팀장이 한마디 했다. "놀라셨죠? 저도 이 친구가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더라고요. 오이 먹으면 병원에 실려간대요."
점입가경, 설상가상, 이건 또 무슨 말이람. 단지 오이가 싫어서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이 알레르기가 있어 오이를 먹으면 목이 간질간질하고 정신을 잃어 병원에 실려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아- 대관절 이게 무슨 말이람. 하고 검색을 했더니 으응? 진짜 오이 알레르기가 있다?
아기들의 경우 입가에 빨갛게 침독처럼 번지는 현상이 생기거나 아이들, 성인의 경우 목이 간질간질하며 잘못하면 쇼크 증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나의 무관심과 무지가 한순간에 드러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후 그 친구에게 단 한 번도 오이를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식 자리가 생기면 오이가 나오는 집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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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세상 모든 음식 중에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오이인 사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게 되었다. 바로 내 아들. 오이라면 질색하며 냄새 맡는 것도 싫어해서 밥 먹을 때 가장 먼 곳에 놓아야 했다. 멀리서 오이 탓을 할게 아니었다. 등잔밑이 어두워 내 아들이 오이 못 먹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알레르기까진 아니지만 오이 자체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터라 오이와의 철저한 분리를 생활화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처럼 먹는데 까다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일단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 양곱창> 참치회> 회> 장어> 해산물(유독 해삼과 멍게는 먹음)>소고기> 돼지고기 순이다. 소고기, 돼지고기야 기피보다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먹긴 한다. 이러다 보니 사회생활 25년 동안 회식이 만만치 않았다. 양곱창, 참치회, 횟집에 가게 되면 미리 컵라면을 먹고 가거나 바빠서 못 먹고 가는 날은 꽐라가 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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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장소를 잡아야 하는데도 난관이 많았다. 특히 양곱창, 참치회, 회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회사지만 나를 위해 조용히 고깃집으로 장소를 배려해주곤 했다. 25년이면 강산이 세 번은 변했을 만큼 내 입맛도 예전 같진 않아서 횟집에 가면 이젠 회 10점은 거뜬히 먹는다. 왜냐? 먹고살아야 하니깐.
오이 못 먹는 신입사원에 대한 놀라움이 아들에게 이어지는 상황을 보며 다양성을 이해하는 좀 더 폭넓은 포용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젠 뭘 못 먹더라도 좀체 놀라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못 먹을 수도 있고, 못해낼 수도 있고, 술을 못 마실 수도 있다. 우린 모두 다른 사람이고, 그 다름을 인정하며 어울려 사는 지구인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