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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r 30. 2024

돼지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1.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사립초등학교 코스를 자연스럽게 밟아오던 아이였다. 성적도 제법 나왔지만 과학고 진학엔 실패했다. 하지만 다행히 자사고 수준으로 그 지역에서 가장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5살 때부터 시작된 조기교육, 퍼부었던 사교육비, 케어했던 선생님들, 그 결과라고 엄마는 위안 삼았다.


하지만 그 위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고등학교에도 무리들이 있었고 그 무리의 눈밖에 난 아이는 입학한지 석 달만에 전학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귀 기울이지 않았으나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져 결국 이사를 가고 학교를 옮겼다. 힘든 학교를 다니다 다소 느슨해진 학교를 가니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성적이 나왔고 노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어느새 노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전 학교에서의 괴로운 호소는 더 이상 없었다. 공부를 하지 않다가도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 학교 아이들 때문에 얘가 정신이 들었나? 싶도록 시험 전에 바짝 공부를 하기도 했다. 대학 입시에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역 거점국립대 스포츠 관련 유망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돼지엄마들 사이에서도 맨 끝에 서서 아이의 의대 진학을 꿈꾸던 아이의 엄마. 그 엄마는 이제 안다. 아무리 사교육을 퍼부어도, 아이를 때려잡아도,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내 아이가 영재라고 믿고 싶지만 그건 때론 엄마만의 꿈이자 욕심이자 허영일 수 있다고. 아이를 위했던 건지, 자신을 위했던 건지 그간의 시간을 묵묵히 되돌아보고 있다고.


#2.


경기권 그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 중 하나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는 남달랐다. 아니 뛰어났다. 초등학교에 가서는 자신이 다닐 학원을 직접 골라 다녔고 학습 스케줄 역시 스스로 짜서 성적을 관리했다. 더 잘하기 위해선 학원이 늘어났고 학원비의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었다.


부모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소릴 해본 적이 없다. 오직 아이 스스로 그 열망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이 되어선 좁은 이 지역을 벗어나 대치동에 입성해야 한다고 아이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50평대 아파트를 처분하고 대치동 20평대 전세도 조금의 대출을 내 겨우 들어갔다.


아이는 아이가 다닐 학원을 스스로 고르고 강사 래퍼런스도 체크해 가장 최적의 사교육 월드를 열었다. 그 사이 부모의 경제력에 작은 어려움이 찾아왔고 결국 부모는 고향인 지역으로 내려왔다. 아이를 혼자 대치동 전세 아파트에 남겨둔 채.


부모는 열심히 지역에서 돈을 벌며 틈틈이 반찬을 만들어 대치동 집으로 보내고 아이는 혼자 씻고 밥을 챙겨 먹으며 학교와 학원을 누비고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가 말이다. 아이도 이제는 힘들었는지 부모가 사는 지역의 영재학교 진학을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의대 진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말이다.


#3.


워킹맘인 지역의 한 엄마. 너무나 바쁜 회사일로 그녀는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만났다. 늘 그랬듯 아이의 학업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아이는 스스로 학업의 파고를 헤처 가고 있었다. 학교를 잘 가보지 못했던 그녀는 고3 진학 상담을 위해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그때 처음 아이의 성적을 제대로 마주한 그녀. 그녀는 선생님께 물었다. 아이가 몇 등을 하냐고. 전교 95등이라는 선생님의 답과 함께 아이의 진로를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냐는 물음이 동시에 왔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의대를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잠시 주춤하던 선생님. 이 점수로 의대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나 그녀는 반성했고 퇴근 후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대학의 진로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아이는 엄마보다 더 진지하게 답했다. 올해는 어렵고 재수를 통해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1년의 재수를 통해 SKY의 한 대학에 그것도 의료 관련 학과에 입학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고. 엄마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겠냐고.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그 무관심이 더 고마웠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삶도 나의 삶도 각자의 자리에서 더 빛날 수 있는 거라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상위 1% 돼지엄마들의 모임이 있는지는 몰랐다. 어느 지역에나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초등학생 아이들 사이에서 쟤는 중 3 영어를 하고 있어, 고 3 수학을 하고 있어라며 등급을 매기고 있다. 매일 몇 시까지 공부와 숙제를 하다 자고 주말에도 학원 공부를 하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엄마가 원해서일까, 아이가 원해서일까. 둘 다 원해서일까.


이 과정들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과 취향의 문제다. 부디 지치지 않으며 다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그들 모두를 응원한다. 돼지엄마가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고, 행복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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