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 다이어트를 한다지만 식욕을 참기는 어려운 나이. 그래서 하루에 꼭 한 끼는 닭가슴살과 함께 해야 위안을 얻곤 한다. 스스로에게 덜 미안한 식욕의 장치라고나 할까. 샐러드로만 먹는 닭가슴살을 넣어 김밥을 말았다. 닭가슴살만큼이나 좋아하는 계란에 올리브오일 대신 참기름을 듬뿍 넣어 볶은 당근 라페와 함께.
가지볶음 김밥
자가 농장에서 무럭무럭 자란 가지. 계절 야채, 가지를 참기름에 달달 볶아 김밥을 말았다. 계란에 볶은 스팸을 돌돌 말아 넣고 볶은 가지를 곁들여 말아낸 계절 김밥. 오분도미로 지어낸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 먹는 김밥. 단무지도 어묵도 그다지 좋아하는 않는 나로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먹는 소소한 즐거움이 좋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자.
인생, 길고도 짧다. 25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아니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자주 돌아보게 된다.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또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일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좋은 일만 할 수 없는 게 또한 직장생활이다.
직장생활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직장을 벗어난 순간만큼은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가며 살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말아낸 김밥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미리 찾아내 준비하고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차곡차곡 쌓아두자. 갑자기 생긴 연차에 뭘 해야 하나 난감해하지 말고. 루틴에 끌려다니지 말고.
끌려다니지 말고 끌어가자.
언젠가는 떠나게 될 직장. 언젠가는 맞게 될 은퇴 시점. 직장인인 우리 모두는 잠재적 퇴사준비생이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만이 가장 스마트한 퇴사준비다. 지금 이 순간 산적한 숙제만큼이나 은퇴 시점에 무엇을 할 것인지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준비 자체가 지금의 업무력을 증강하는 윤활유가 된다. 또한 스스로의 큰 무기가 된다. 끌려다니지 않고 인생을 즐겁게 끌어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예쁘게 말아먹은 김밥 하나에 거창한 인생을 갖다 붙이냐고 하겠지만 우리 인생도 김밥처럼 먹고 싶은 것들로 좋아하는 것들로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죽어라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이 또한 우리 앞에 놓여 있더라도 은퇴라는 행복한 졸업을 위해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아직 늦지 않았고 지금부터 시작하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