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낀 세대를 위한 위로와 위무
술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낯빛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핀 조명이 꺼진 전시물처럼 그 친구의 표정만 유독 다크 했다. 대화에도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친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늘 보직 해임서를 대표에게 제출했어.
기업에 다니는 내겐 다소 생소한 문서라 뭘까? 하던 차에 친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공기업에서 사표가 아닌 상부에 유일하게 올릴 수 있는 목소리를 담은 저항의 의미란다. 40대 중후반인 친구는 팀장이면서 과중한 책임과 업무로 1년 넘게 스트레스와 격무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사원, 대리, 과장이라는 혹은 선임이라는 직급으로 통칭되는 이 세대가 MZ로 가득 메워졌다. 야근이라는 워딩이 낯설고 회식이라는 워딩은 극혐 하며 사내 MT라는 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들, 한편으로는 합리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들이다.
정년퇴직이 보장된 공기업의 팀장 직급 이후 팀원으로 근무하는 분들의 라떼는 업무를 지시하고 보고 받는 매우 편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합리적이고도 개인적인 MZ 세대들이 포진하며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럴 거면 출근은 왜 하시고, 월급은 왜 받아가는 거예요?
편한 루틴의 특혜를 모두 누렸던 윗세대(그들은 특혜 인지도 모른다)와 MZ 세대 사이에 낀 X세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둥둥 부유하는 물 위의 기름 덩이 같은 신세다. 이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팀장도 실무를 해야 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전략을 내놓아야 하는 (어쩌면 당연한 거지만) 슈퍼 엔터테이너를 요구하는 시대다. 낀 세대의 역 특혜인 거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1년의 꼭지 도는 스트레스를 마감하고자 보직 해임서를 제출하고 온 길이었다. 대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걸 진짜 내는 거야?’라고 했고 그는 ‘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잘해야 한다는, 잘 해내야 한다는 절대 강박의 X세대가 당당히 세상에 내던진 사이다 출사표. 살아야 하기에, 잘 사는 게 중요하기에 그에게 꼭 필요한 엑시트가 아닐까.
승진보다 지금의 워라밸이 더 중요한 MZ세대란다. 이건 뭐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다. 라떼와 비교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섞여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지만 모두가 서로의 입장에서 돌아보고 소통하고 융화된다면 세대 갈등이란 워딩에서 갈등이 쏙 빠져주지 않을까. 친구의 보직 해임을 대표가 과연 받아 줄지는 모를 일이지만 용기를 내어, 살기 위해 투척한 사이다 출사표가 부디 그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빈다. 그리고 열렬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