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꿔 놓은 교수님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
절대권력 그 자체였다. 가스라이팅의 일상이었다. 강의 시간은 늘 간단한 몇 마디로 끝나고 술판이었다. 그래도 그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다반사였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걸 어떻게 지나왔대, 외려 스스로 대견해지는 순간이다.
교수님과의 술자리에 에티켓은 교수님의 주류 취향을 정확히 세팅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좋아하시는 맥주 브랜드가 유독 없는 그 집에 양해를 구하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테이블에 올려드렸다. 꼭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보이지 않게 가져와야 하는 게 또한 불문율이었다. 다 드시면 또 잭깍 뛰어가 사 와야 했다. 두 번째 에티켓은 교수님의 안주 취향을 빈틈없이 맞춰드려야 하는 것이었다. 젤리, 초콜릿을 유독 좋아하시는 교수님을 위해 종류별로 사서 그릇에 예쁘게 세팅해야 해서 드시게 해야했다.
담배 심부름은 기본이었다.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브랜드의 담배를 사와야 했고 술자리의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하나씩 사야 하는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호통도 달게 들어야 하는 그때였다. 당시엔 여학생들에게 대한 교수님들의 무례함도 모두 묵인되던 그때였다. 참다못한 타과의 한 여학생이 그 과 교수님의 추행을 외부에 외쳐 사회적 문제가 되어 시끌했던 갑질 시대의 종말 즈음이었다.
신입생 환영회, MT라는 단어가 존재했던 그때, 3개의 전공이 함께 MT를 갔고 당시 기수 회장이었던 내가 동기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해야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쉽지 않았지만 동기들과 신나게 준비했던 기억이다. 행사가 끝이 나는 저녁 교수님의 잠자리를 만들며 한 선배의 조언이 이어졌다. 교수님의 방은 몇 호실로 정해져 있고 이불을 편 후 머리맡에 주전자에 물을 반쯤 채워야 하며 맥주를 냉장고에 꼭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 어이없게도 이 모든 것들이 전통이라고 했다.
직장의 한 후배는 다른 대학교의 과대표였는데 교수님을 위한 모든 준비 과정이 나와 비슷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다. 거기가 좀 더하다고 느낀 건 교수님이 좋아하는 양주 브랜드가 머리맡에 준비되지 않아 후배가 뺨을 맞았다는 것. 좀체 잘못된 상황에 대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의 후배임에도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진 나머지 굽신하며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젠 모두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나 후배나 모두 어이없게도 갑질 종말 시대의 끝자락에서 겪은 일종의 군대 무용담이 되어버린 이야기지만 지금도 여전히 끔찍한 순간이다. 나야 뭐 X세대라 이런 이야기 자체가 꼰대 스토리지만 직장의 후배는 아직도 MZ세대임에도 그런 테러블 한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 세대 간 묘한 동질감을 느낀 아주 오랜만의 순간.
그 교수님을 얼마 전 오랜만에 뵙게 되었다. 너희들이 졸업을 하고 지금은 학생들에게 술을 먹자는 이야기조차 쉽지 않다고. 술자리에서 교수님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너무나 어이없고 황당하다고. 시대가 변했지만 학생들조차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그날 그때처럼 술을 마시며 안주를 준비해 드리고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호통도 달게 들었다.
대학, 대학원의 뾰족한 갑질의 가시가 다소 무뎌지고 있다는 신호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라는 제도권 안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바보처럼 살지 말기를.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란 걸 꼭 기억하기를. 갑질의 아픈 기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지 않기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꼭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