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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13. 2022

선생님, 선생놈

선생님에 대한 추억, 그리고 현재진행형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무려 30년이나 더 지난 유물 같은 이야기다. 그녀는(그년은 이라는 워딩은 하지 않겠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아이에게 지령을 내리듯 알려주고 가져오게 하는 선생님이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얘기한 후 학부모가 챙겨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수금하듯 받아 챙기는 그녀였다. 그걸 해오지 않으면 작은 실수에도 아이의 뺨을 날려 치는 거침없는 그녀였다.


그것도 모자라 여자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파트의 청소를 시키는 그녀였다. 심지어 그녀의 아파트는 버스를 타고 10코스를 가야 하는 당시 아이들에겐 꽤 먼 거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퇴근 전 아이들이 집에 먼저 가 말끔히 청소해준 집으로 쏙 들어가길 원했고 아이들은 그걸 또 매주 미션 수행처럼 해냈다. 그땐 그게 잘못된 건지도 모를 때였고 부모들이 알아도 그러려니 하던 시대였다.


선생님에게 맞지 않기 위해 잘 보이려 했던 아이들은 1년의 시간을 그렇게 셀프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가까스로 넘겨왔다. 선생님 집 청소를 위해 나도 몇 번을 여자 아이들과 동행했던 기억이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때의 악몽을 아직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무렵 조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 되었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누나는 고민이 되었다. 당시는 김영란법이 없던 시기였고 스승의 날은 당연히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보내야 하는 때였다. 상품권을 보낼까 하다 그때 마침 출간한 나의 시집이 있어 그 책에 사인을 해서 보냈다.


다음날 조카는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맨 끝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선물한 시집을 몇 번이고 흔들어 보지 않았을까? 돈이나 상품권 봉투가 분명히 있을 건데 왜 없지 하면서. 결국 흔들어도 나오지 않았을테고 맨 뒷자리는 조카에 대한 복수로 이어진 결과가 아닐까 했다. 너무 분하고 속상했지만 1년을 겨우 참아 그 선생님의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거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제는 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고 몇 해 전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느 학교의 그 선생님은 학기 초가 되면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타이틀로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 나가 가족에 대해 발표를 하는 프로그램을 늘 진행했다고 한다. 아빠, 엄마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문제는 거기에 아빠, 엄마의 연봉까지 함께 발표를 한다는 거다. 이제는 퇴임을 했을 그 선생님, 대체 왜 그러셨어요.


김영란법이 건재하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는 선생님이 분명 있을 거라 본다. 주는 사람이 있으니 받는 사람이 있는 거고, 받는 사람이 있으니 주는 사람이 있는 거라고 하겠지만 여전히 받는 선생님은 받은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해야 할 거고 그게 결국은 차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로 이어지리라 본다.

@pixabay

나의 국민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이 지리멸렬한 선생님의 봉투 이슈는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물론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선생님과 학부모, 이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갑질 구조를 내 아이가 학부모가 되는 그날엔 꼭 추억 속 유물 같은 이야기로만 남겨지길 기대한다.


대학 교수인 친구가 얘기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학교로 연락하는 게 아니란다. 교육부로 바로 연락해 학교와 교수의 비상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고. 생각해보니 학부모 역시 예전의 가스라이팅을 당하던 그 순진무구한 우리들은 또 아니구나 싶다. 이렇게 우린 상생하며 교육의 길을 함께 열어가고 걸어간다. 오늘 내 아이의 학원 스케줄은 몇 개일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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