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초특급 슈퍼 울트라 낙하산이었다고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에 갑툭 들어와선 그 부서를 초토화시켰다고 한다. 심지어 그 회사의 메인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부서의 장이라는 보직을 주어 사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때는 뭐 그럴 수도 있는 사회적 분위기였고 그런 갑질이 조금은 용인되던 때였다.
사사건건 업무를 간섭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기분에 따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하지 못하게 되어 수행하던 프로젝트가 멈추게 되고 결국 그 잘못은 고스란히 진행하지 못한 담당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 부서장을 건너뛰어 업무가 진행되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그는 또 담당자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과도한 음주를 하고 난 다음날이면 사내의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 숙면을 취하고 그의 개인적 약속에 기사 마냥 직원을 대동해 갔다고 한다. 직원에게 개인 스케줄 관리를 지시하고 업무 중에 '티'나는 일만 승인하고 진행했다고 한다. 기존의 루틴 업무들은 죄다 펑크가 났고 부서의 전 직원들이 서서히 전의를 상실해 갔다고 한다.
하루 중 가장 고역의 시간은 점심시간. 모두 함께 점심을 먹던 시절이라 그가 원하는 메뉴만 오직 가능했고 식사를 하러 가서는 직원의 음식에 슬쩍 젓가락을 대며 맛을 보는 게 일상이었다고 했다. 먹는 것 가지고 쪼잔하게 그러냐고 했지만 그게 일상다반사가 될 때는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여직원에게도 가끔 기분 나쁜 성적 발언을 해 울고 있는 여직원을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 생각이란 게 있을까 싶은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어느 날 승용차로 떠난 장거리 출장에서 직원에게 내내 잔소리를 해댔고 참다못한 직원은 고속도로 한가운데 쌍욕을 하며 그를 내리게 한 후 그대로 그를 두고 그냥 떠나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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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그는 그 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결국 그 직원은 사표를 던지고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그 퇴사한, 아니 퇴사를 당한 그 직원은 그 부서장에게 밤늦게 전화를 해 쌍욕 시전을 했다고 한다. 그다음 날 회사에 출근해 그 직원의 무례함을 하소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직원들.
회사를 떠나야 하나 탈탈 멘탈이 털리던 어느 날, 다행히 그들에게도 희망의 순간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전보 소식이 들렸고 얼마 후 타 부서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그곳에 가서도 여전히 진상이었던 그는 결국 자신도, 회사도 견디지 못해 퇴사의 파국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어두운 터널의 시간을 보냈던 직원들은 드디어 독립만세를 부르게 되었다고.
10년 전쯤의 한 회사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난 꼰대력 충만한 라떼 이야기다. 물론 여전히 갑질 상사가 존재하는 드문 경우도 있겠지만 세상이 참 환하게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상명하복의 군대식 직장 문화에서 이제는 할 말은 하는 소통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리더들의 커뮤니케이션, 임파워먼트가 더 중요한 지금이다.
얼마 전 경기도 모 회사에서 상사의 갑질, 가스라이팅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직원의 소식을 접했다. 자녀도 있는 가장이었고 누구보다 회사를 위해 진심인 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인이 아끼던 직장의 동료라 소식을 듣고 너무 침통했다는 그의 얘기를 듣고선 착잡하고 참담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었던 걸까. 익숙해져 버린 길들여진 버린 도무지 벗어날 방법조차 알 길 없는 무모함 때문이었으리라. 나도 우리도 이제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갑질의 세계는 너무나 다양하고 그 갑질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강도 높은 갑질의 수위를 견디지 못하면서도 혼자 앓고 있는 그들을 빠르게 발견하고 따듯하게 안아줄 수 있는 우리였으면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아버지이며 형일 수 있기에. 더 이상 갑질로 세상을 떠나는 직장인이, 또한 누군가가 생겨나질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