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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Jun 02. 2022

단체 채팅방, 바로 답하지 않으면 바로 전화하는 상사

숨을 못 쉬게 하는 단체 채팅방 가스라이팅

사실 다수의 사람들의 소통 공간으로 단체 채팅방 만한 게 없다. 다섯 명이라도 1500명이라도 일일이 연락을 할 필요 없이 한꺼번에 공지 기능이 가능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나누는 최적의 공간이다. 기능 또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다양한 편리함을 제공해 주고 있다. 대한민국에 단체 채팅방 단톡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




초등학생들 역시 단톡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초등학생인 그녀의 아들 역시 단톡으로 친구들과 만나고 낄낄 대는 일상의 하루였다. 어플을 깔아달라는 아이의 부탁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그녀는 아이의 단톡에 올라온 글을 보고 경악했다. '놀이터에 있는 OOO, 기분 나쁘고 재수 없으니까 지금 칼 들고 가서 죽여버릴까?'라는 메시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왔고 아이들 역시 하나 둘 '응', '그래'로 하나씩 메시지들이 화답했기 때문이다.


정신 차린 그녀는 나쁜 메시지를 남긴 아이의 엄마에게 바로 연락했다. 잘못된 것은 곧바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그녀의 신념대로. 다행히 그 엄마 역시 그릇된 아이의 행동에 대해 인정했고 그 아이와 그녀의 아이가 단톡방에서 퇴장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당분간 그녀들은 아이들의 채팅 어플을 금지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에게 수시로 잘못된 채팅방 예의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일러두곤 한다.

@ pixabay




그의 상사는 대면 회의 못지않게 단체 채팅방으로 업무를 지시하고 진행했다. 하루에 대면 회의는 기본 4개, 업무 단체 채팅방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마치 회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 같았다. 업무 시간에만 이 단체 채팅방이 운영된다면 참을 만 하지만 퇴근 후, 주말에도 채팅방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주말에도 그가 남긴 메시지에 곧바로 답을 하지 않는 직원에게는 곧바로 전화를 해 피드백이 늦다는 핀잔을 주었다. 다행히 그 상사는 지금 그 회사에 없다. 그가 지금 숨 쉬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녀의 아파트는 입주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대단지 아파트라 입주민들도 꽤 많다. 이곳은 초등학교 엄마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은 어느 방보다 소통이 활발하다. 아이들을 위한 교내 행사를 비롯해 공지사항이 많고 맞벌이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어떤 소통 창구보다 더없이 편한 공간이 때문이다. 손품을 팔지 않아도 아이 학교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단체 채팅방이 정보만 올라오는 곳은 또 아니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한동안 그녀를 우울하게 했던 작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놀이터를 지나가던 한 엄마가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쌍욕을 한 것을 목격하게 된 것. 그 엄마는 지나치지 않고 그 상황에 대해 단체 채팅방에 사실을 알렸고 그때부터 격한 학폭의 가스라이팅을 시작했다.


욕설 또한 언어폭력이기에 학교에 요청해 학폭을 열어 쌍욕을 한 아이에 대한 응징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식 키우는 엄마들 마음이 그렇듯 많은 엄마들이 동조했고 이런 나쁜 일은 초반에 싹을 없애야 한다는 마음으로 실제 진행이 될 뻔도 했다. 그 엄마의 적극적인 처단 계획에 아무도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3일이 지났을 무렵 도무지 참지 못한 지인이 한마디 남겼다.


아이가 실수했을 수도 있는 욕설로 학폭까지 열 일일까요? 아이나 엄마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할 거라고 생각들 해보진 않으셨어요?


메시지를 읽고도 엄마들의 큰 피드백은 없었다. 다만 개인 채팅으로 그녀를 응원하는 분들은 간혹 계셨다. 괜한 편을 들었다간 어떤 상황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단체 채팅방에서 학폭을 제안한 지 1주일이 지났을 주말 오후, 드디어 가해자(욕설 한 번 했다고 가해자가 되어버린)의 엄마가 메시지를 남겼다.


맞벌이 부부고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위 학원을 빨리 알아보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방과 후 시간 아이를 잠시 혼자 있게 했던 때였습니다. 아이가 실수로 욕설을 한 거 같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메시지를 본 그녀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는 것에 대한 분노와 내 아이, 아니 여기 함께 있는 모든 엄마들의 아이가 언제 이런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제야 그 학폭의 이슈는 단체 채팅방에서 잠잠해졌다. 학폭을 제의했던 엄마나 동조했던 엄마들이나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가해자(이제는 아니지만) 엄마에 대한 그 어떤 조치도 없었다.

@ pixabay


정보 소통의 가장 편리한 기능 외에 숨은 가스라이팅의 폐해가 분명 존재하는 단체 채팅방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예의를 상실해선 안된다. 대면 예의보다 온라인 상의 예의가 더 필요한 이유는 더 큰 상처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면이 아니기에 오해를 풀거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한 과정이 더 더딜 수 있다. 상처는 연령을 구분하지 않는다. 또한 때를 예고하지도 않는다.


오늘 채팅 어플을 열어 내 단체 채팅방은 몇 개인지 필요 없는 방은 정리하고 꼭 필요한 방만 남겨두는 건 어떨까? 그리고 그 채팅방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혹여나 실수를 하지는 않았나 돌아보자.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안에 함께하고 있는 하나하나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귀한 분들이다. 그런 분들과의 케미를 위해선 꼭 필요한 방이지만 외려 오해나 불편한 상황을 불러오게 되는 방이라면 잠시 그곳을 나올 필요가 있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나 자신만을 오롯이 바라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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