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회사를 다니는 아빠를 따라 돌이 지난 아이는 인도네시아로 가족과 함께 떠나게 된다. 아이가 커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았다. 심심해하던 아이에게 색연필과 종이를 줬다. 그렇게 그 아이의 그림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든 것을 너무나 또렷이 기억해 내는 아이, 그래서 아파트에서 영재로 소문이 났다. 이렇게 영특한 아이가 있냐며 새삼 부러움 속에 아이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공감 반응이 좀 느린 것 같아 병원을 갔고 그 길로 발달장애 자폐라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형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해외에 있는 남편을 원망했다. 도와줄 사람은 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펑펑 울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배고파서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밥을 했다. 그리고 셋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절대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너희들이 행복하게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너희를 위한 인생을, 더 빛나는 인생을 위해 일어나겠다고.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장애 아이의 형으로 산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도 그의 형도 그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 기장 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한 'Communication through Art(C-Art, 씨앗) 발달장애인 전문작가 육성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의 파일을 열어보면 깜짝 놀란다. 1만 6000여 개의 각기 다른 로봇 캐릭터들이 하나씩 그려져 있기 때문.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그에게 이 모든 로봇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다. 그의 작품 속엔 이 수많은 로봇 캐릭터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릴 채우고 그만의 작품 세계가 된다.
황성제 작가의 작품 @손호남
한젬마 작가의 가이드를 통한 전시는 물론 제30회 대한민국 장애인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았던 그는 외교부가 주최한 남태평양 14개국 ‘섬을 그리다’ 전시회에 초대됐으며, KT&G ‘Over the Rainbow’ 작가로 선정돼 홍대∙춘천∙부산 순회전에 참가하는 등 50여 회의 개인전, 그룹전을 이어왔다.
처음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알고 펑펑 울었던 그 순간을 그녀는 가끔 떠올린다. 물론 지금도 쉽지 않은 시간들의 연속이다. 오롯이 그녀만을 위한 시간이라곤 그녀 삶 속에 없다. 하지만 황성제 작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그려가는 과정 속에서는 그녀는 새로운 삶의 빛을 찾았다.
황 작가의 형 역시 자기 몫, 그 이상을 하고 있다. 과학도에서 의학도로 진로를 변경해 조교의 길로 가고 있고 끊임없이 엄마와 동생과 소통을 이어가며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환경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이 가족을 지지해 왔다.
먼 해외에서 일하는 아빠 역시, 평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두 아들의 각자의 행보와 아내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에 늘 고마운 마음이다. 더 표현하지 못해,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도와주지 못해 가슴 아플 뿐이다.
함께라면, 여행, 행복 등 황 작가의 작품들은 삶은 여행이라는 여정 속의 순간을 포착해 그려낸다. 그때 우리 가족의 추억,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했던 행복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로봇 캐릭터를 오브제로 다양한 컬러로 재해석되어 캔버스에 담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옹기종기 사람들의 틈 속에서 웃고 울며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우리의 '사이'를 생각하게 된다. 비싼 작품, 비싸질 작품의 가치보다 더 큰 삶 속에 영글어질 행복의 가치를 더 생각하게 된다.
올해 많은 스케줄로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황 작가와 여전히 그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그녀, 김금자 님을 보면 그간의 힘든 시간들에 대해 눈시울이 붉어지기보다 앞으로의 더 푸르른 미래에 대한 응원의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기도한다.성과보다 과정에 더 행복한 작가로 함께 하라고.
황성제 작가와 그의 어머니 김금자 님 @손호남
'장애 청년 황성제 작가', '발달장애 청년작가', '자폐 청년작가' 등의 타이틀에서 이제 장애라는 워딩을 덜어내야 할 때다. 그는 그저 로봇 캐릭터를 캔버스라는 인생 위에 담아내는 팝아트 작가일 뿐이다. 장애 작가라는 것 자체가 사족이다.
장애인이라는, 장애인의 엄마라는 어쩔 수 없는 이름들을 안고 살며 그 무거운 무게를 훌쩍 뛰어넘어 행복을 만들어가는 황성제 작가, 김금자 어머님의 인생을 열렬히 응원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황성제 작가의 컬러풀한 작품 인생을 또한 뜨겁게 응원한다.
황작가가 어린 시절 치료비가 감당이 안 되고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 그녀와 황작가만 세상에 없다면 남편과 첫째는 행복해지치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는 그녀, 그 모진 시간의 파고를 넘어 당당히 지금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