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카피 Jun 06. 2022

세상에 좋은 '시어머니'는 없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색함과 불편함, 시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하여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녀는 비교적 일찍 결혼을 했고 신혼집 근처에 사는 시어머니는 생일상은 물론 친구들과의 식사를 며느리인 그녀가 손수 만들어 대접해 주길 바랬다. 생일상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가 아니면 꼭 마치고 서운하다는 잔소리를 퍼부었고 친구들을 위한 상차림에도 며느리가 늘 솜씨가 없고 정성이 부족하다며 친구들 앞에서 험담을 했다. 그날도 여지없이 손님을 우르르 몰고 온 시어머니. 그녀는 그날 짜장면 한 그릇씩만 배달시킨 채 그냥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조금 오래 전의 이야기다. 그녀는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 동창인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 일이 바빴던 그녀는 결혼 준비가 조금은 수월했다. 그가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고 기본적인 살림만 추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딱 필요한 것만 사고 미니멀하게 살아가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달랐다. 어느 날 그녀의 회사 앞으로 찾아온 예비 시어머니는 종이 한 장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냉장고, TV를 비롯한 가전제품과 자신의 모피코트, 명품 가방 등 줄줄이 나열된 품목 옆으로 브랜드까지 친절히 적혀있었다. 예식장은 물론 청첩장까지 예약, 주문이 들어간 때였지만 그녀는 과감히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했다. 지금도 그녀는 솔로 라이프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예비 며느리에게 김장을 담그니 찾으러 오라는 예비 시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고민 끝에 김장을 하러 갔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김장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해야만 했다. 모두가 뜯어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 될 사람이 좋아서 결혼을 했고 고난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남편의 발령으로 서울로 이사 간 그녀는 명절과 큰제사의 고난만 잘 견디면 된다. 남편의 형네는 다른 지방에 산다. 의료계에 종사하며 당직을 핑계로 모든 준비가 끝나면 얄밉게 딱 도착을 한다. 밥을 먹고는 일을 핑계로 또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한다. 모든 음식과 모든 설거지는 그녀의 몫. 큰 아들 음식 싸줘야 한다며 산더미 같은 음식을 하루 종일 만들고 싸고 치우는 일은 모두 그녀의 몫이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혼집 근처에 사는 시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초인종도 누르지 않은 채 집으로 불쑥불쑥 들어왔다. 저녁 반찬은 무엇인지 디저트는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찾았고 남편의 속옷을 챙겨 집으로 가 세탁을 해 며칠 후 가져왔다. 그러길 몇 년째 반복하고 있다며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한 건지 이제는 그것조차 헷갈린단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엄마가 일찍 아빠를 여의고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건데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며 자신을 몰아세웠단다.


시어머니에게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다. 절대 그 둘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시어머니의 집을 사는데 아들이 장만해야 한대서 장만해 드렸다. 그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 월세를 내고 아들 집 근처에 다시 전세를 얻어 드렸다. 그 월세는 당신의 집이니까 당신에게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의 아파트 관리비, 통신비 등 모든 비용은 아들 네가 내고 있다. 어머니와의, 모든 가족들과의 외식 또한 아들 네가 비용을 부담한다. 하지만 가끔 시누이와의 식사를 시누이가 계산을 하면 딸이 밥을 샀다며 온 동네에 자랑을 한다. 매월 100만 원의 용돈을 드리는 아들이지만 시누이가 가끔 100만 원 용돈을 드리면 그것 또한 온 동네에 광고를 한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 전엔 그녀의 행복을 약속했지만 결혼 후 늘 잦은 음주로 그녀를 괴롭게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그 버릇한 변함없었고 외박도 잦아졌다. 다 못한 그녀가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정에 충실해 달라며 사정하고 매달렸다. 그는 매몰차게 그녀를 뿌리쳤고 급기야 폭력이 시작되었다. 더욱 잦아진 외박에 폭력에 그녀와 아이는 피폐해져 갔다. 이혼도 쉽지 않았다. 절대 이혼은 안된다는 그. 그를 설득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였다. 그녀의 편은 아니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좋은 시어머니는 없지만 좋은 여자는 있다. 세상에 자신의 엄마만큼 살갑고 편한 시어머니가 있을까. 물론 실제 딸처럼 지내며 죽고 못 사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분들도 꽤 있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것,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텍스트 속 행간이다. 딱히 해결할 솔루션이 없다면 불만만 가질 게 아니라 마음을 바꿔 볼 수밖에 없다. 몇 해 살고 말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 pixabay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색함과 불편함, 세상에 좋은 시어머니는 없지만 같은 여자로서 좋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마음 플랜을 다시 짜보는 건 어떨까. 그 과정 속에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남편이다. 방관하지 말고 그 사이에서 중재하며 오해 없도록 서로의 편에서 서로를 연결하는 끈으로 가족이라는 든든한 매듭을 매끈히 만들어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라는 타이틀이 사라진 어느 인기 작가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