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카피 Jun 11. 2022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이의 아빠로 산다는 것

무거운 짐이 행복한 힘으로 바뀌기까지

그를 만난 건 발달장애 형제 아동들의 예술치료를 위한 한 캠프 행사장에서였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캠프로 그는 아이가 초등학생인 시절 매년 참가했다. 1년 중에 유일하게 1박 2일 동안 자폐 자녀와 잠시 떨어져 부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들, 그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하지만 그 시간마저 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또 걱정을 놓을 수 없는 그들이다.




캠프장을 떠나 근처 숙소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행사장을 다시 찾는 그들이지만 그날은 그의 아내가 다음날 부모들을 위한 특강을 해야 하는 날이라 같이 숙소 배정을 받고 간단히 캔맥주를 기울일 수 있는 날이었다. 같은 남자로서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 밤, 그는 둘째 아들이 처음 발달장애 자폐를 진단받았던 그날에 대해 회상했다.


어려운 단어를 곧잘 외워 동네에서 영재로 소문난 아이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는 주위 엄마들의 조언에 별일 아닐 거란 마음으로 부부는 병원을 찾았다. 큰 병원을 찾았던 그들은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오후까지 집중 검사로 이어지는 과정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심리적인 문제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 정도의 간단한 진단을 기다리던 그들을 의사가 조용히 불렀다.


의사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발달장애, 정확히 자폐라는 진단을 내렸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 너무 놀란 그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한 터널처럼 느껴졌다. 집에 도착한 그는 잠시 외출한다는 말을 남기고 산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나무를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다.


자폐 아동의 형제에 있어 비장애 형제는 늘 소외받기 마련이다. 장애 아동을 케어하다 보면 어느새 구석에 방치된 형제가 있기 마련. 이 가족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첫째 아들은 어떤 순간, 상황에 있어서도 동생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 캠프에서도 매 순간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초등학교 때 만났던 이 형제가 벌써 첫째는 입대를 했고 둘째는 대학생이 되었다.


10년이 넘게 이어진 이 가족과의 인연은 여전히 지금도 대전과 부산의 거리를 극복하고 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끔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그의 메시지가 온다. 그리고 답한다. 가족이 오랜만에 여행을 갔거나 좋은 일이 있는 날이면 잊지 않고 연락을 준다. 한 가족의 성장기를 온전히 체감하며 나 또한 함께 성장해온 시간에 참 고맙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장애에 좌절하기보다 극복하기 위해 장애에 대한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발달장애 지역 단체장을 맡으며 같은 상황의 부모들에게 힘이 되고자 뛰고 또 뛰고 있다. 많은 장애 중에서도 또한 쉽지 않은 장애 역시 발달장애, 자폐다. 자립이라는 영원한 과제를 끝끝내 이루기 힘들다는 사실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부모들이다. 자신들이 죽고 나서 아이들이 험한 세상을 헤처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길 손꼽아 기도하는 부모들이다.


발달장애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난 엄마에 관한 뉴스를 가끔 접한다. 하루 10분도 쉴 틈이 없었을 그녀, 그녀는 얼마나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을까, 아이의 기나긴 쉽지 않을 길에 대해 자신이 없어서였던 걸까. 여전히 열악한 사회적 시스템과 따가운 사람들의 시선이 아쉽다. 바로 우리 이웃에도 함께하고 있을 발달장애에 대해 좀 더 따뜻한 관심과 실천이 절실하다.

@ pixabay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기보다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눈빛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힘이 된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로 함께 우리 안으로 데려와 안아주는 것, 작은 실천으로도 큰 변화는 시작된다. 예술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분야와 컬래버레이션하며 융화되고 융합하는 과정들이 그들과의 경계를 허무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디딤돌이 될 거라 믿는다.




얼마 전 첫째가 제대를 하고 호주로 연수를 떠난다며 그는 어김없이 연락을 주었다. 둘째도 학교를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는 그에게 주말인 오늘 오랜만에 안부 연락을 해야겠다. 그리고 늘 랜선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그와 대전 출장길, 차라도 한잔하자고 해야겠다. 긴 인생의 길, 참 고마운 인연으로 함께할 수 있어 좋은 그에게.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좋은 '시어머니'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