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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은 언제나 내어 줄 수 있어

토편지

by 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엊그제 오후 서너 시 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어요.

핸드폰, 급하지 않은 경우엔 대체적으로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연락을 하곤해요.

통화를 원하는 경우는 그와 반대로 급한 상황인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바쁘니? 톡을 읽지 않아서 전화를 했어"

직장에 다니는 친구의 전화였어요.

평일 오후, 한창 바쁜 직장일에 쌓여있을 친구였지요.

"응, 핸드폰을 열어보지 않아서 그래."

사실 핸드폰을 자주 열어보지 않는 편이에요.

전화 벨소리가 재촉하는 듯 들려오는 것도 어쩐지 탐탁치 않아 번번히 진동으로 돌려놓기도 하거든요.

따르릉 소리, 피아노 건반음, 아니면 좋아하는 노래 등등 다양한 벨 소리를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요.

이것 저것 조금씩 핸드폰 벨소리로 짧게 맛을 봤지만 결국엔 진동음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아무것도 거슬리지 않는 낮고 조용한 떨림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에요.

통화를 마무리하면서 친구와 둘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어요.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되니까 반찬 신경쓰지 말고~"

가리는 것 없이 착한 입맛의 소유자답게 고운 당부의 말까지 전해주었어요.

"으응, 알겠어."

뜨듯 미지근하게 응답을 하면서도 과연 어떤 음식을 차려야 좋을 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어요.

돼지고기에 잘익은 배추김치를 송송 썰어넣은 김치찌개를 끓일까?

아니면 두부랑 표고버섯을 넣고 청양고추로 감칠맛을 올리는 청국장을 끊일까?

짧은 고민 끝에 시골 스타일, 청국장을 끊이기로 하였어요.

냄새는 요란하지만 깊고 부드러운 맛을 선사하는 콩알알갱이 떠먹는 재미가 남다른

청국장이잖아요.

(청국장에 집 된장을 살짝 섞여 끓이면 더 감칠맛이 좋고요)


SE-0f5aff9a-a572-40ce-a7d1-94c36ae23af7.jpg?type=w773 시골 청국장☆


친구의 퇴근 시간 전에 부랴부랴 부모님의 저녁을 차려드렸어요.

먼저 치매 아버지 식사먼저, 후에 감기에 걸린 엄마순서대로요.

물론 누렁이와 고양이, 한 지붕 맨 아래 밥그릇도 각각 챙겨주었고요.

(서로 아는 사이지만 누렁이와 고양이는 데면데면, 서로 모르는 척 지내요)

부엌 시계에 눈길을 연신 주면서 바쁜 손놀림으로 청국장을 뚝배기에 끓여냈어요.

농사지은 무로 만든 깎두기가 마침 알맞게 익었으니 함께 곁들여 놓고요.

밑반찬이야 새로울 것 없지만 그래도 식탁한켠에 조그맣게 담아 냈어요.

대문도 없는 너름 마당으로 친구의 하얀 차가 스스륵 들어서고 있었어요.

이미 여러번 왕래한 친구, 부모님도 친구를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우린 먹었응께 어여 저녁밥 먹어~"

엄마는 마스크를 낀 채 저만치 거실 소파에서 누우셨어요.

(감기가 아직 낫지 않은 지라 엄마는 손님맞이용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었어요)

친구와 식탁에 마주 앉아 수저를 들었어요.

"와!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이네. 아파트에선 청국장을 편하게 끓여 먹기가 어려운데."

친구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한 입 청국장을 떠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느라 바빴어요.

"시골 청국장 만나기 쉽지 않지, 사진으로 남겨야지."

번지르르한 반찬없이 덩그라니 놓인 청국장에 시골반찬 서너가지가 무에 대단한 일인가.

짐짓 미안하여 친구의 눈치를 봐야 할 처지였것만 예상밖 친구의 반응은 적잖이 놀라웠어요.

기쁜 낯빛으로 사진을 찍다니요.

잔치음식은 커녕 평범하디 평범한 시골 청국장인데 말이지요.

직장에서 고단한 몸으로 돌아온 친구에게 설렁설렁 날아가듯 밥알을 퍼담을 수 없었어요.

하여 남편에게 내주듯이 고봉밥을 퍼 담았고요.

"고봉밥 내 몫이니? 밥은 조금 덜어내고 먹을 게."

친구는 바글바글 끓고 있는 청국장을 크게 한 국자 떠내고는 밥과 함께 야무지게 먹었어요.

나중에는 밥 한 수저를 남겨두고 배부르다면서도 남김없이 고맙게 밥그릇을 싹싹 비웠고요.

"야! 진짜 잘 먹었어. 배부른데도 다 먹어 버렸네."

환하게 웃으며 수저를 내려놓는 친구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뿌듯한 것은 무얼까.

음식을 차려 내놓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일테지요.

친구가 사는 아파트, 공동주택 생활과는 다른 삶의 맛을 시골청국장을 통해 맛볼 수 있어요.

편의 시설이 하나 없어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그에 반해 마음은 편안한 농촌생활이에요.

꼬리꼬리한 시골 청국장뿐이지만 친구에게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내어줄 수 있으니까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



envelope-7076001_640.png 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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