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아리는 있어도 없어야 하는데

토편지

by 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어린 시절부터 여태까지 아버지는 강아지를 귀여워하셨어요.

어떤 종류의 강아지라도 평생 곁에 두시면서 살아오셨고요.

단 한번이라도 개나 강아지가 없었던 시절을 찾아볼 래야 찾을수 없을 정도고요.

며칠 전 뜬금없이 아버지가 병아리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 병아리 좀 어디가서 사왔으면 좋겄는디."

처음에는 생전 듣지 못한 말씀이시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되물어야 했어요.

"에? 병아리요? 강아지가 아니고요?"

아버지는 맑은 낯빛으로 계속 주장을 이어가셨어요.

"그려. 병아리."


고양이가 병아리를 그냥 두고 보지 않을 듯한데 어찌 병아리 타령을 하시는 지 아득한 심정이었어요.

고양이는 고양인지라 본능대로 연약한 병아리 목숨을 앗아갈 게 환하였고요.

곁에서 엄마도 아버지의 굽힐 줄 모르는 말씀을 며칠 간격으로 계속 들어야 했고요.

"유성시장에 너랑 나랑 한번 다녀오믄 워뗘?

니 아부지가 병아리 타령을 하는 디 시장에 다녀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것니?"

(엄마는 실은 동물을 키우는 것을 조금도 달가워 하지 않으셔요.

강아지라면 애먼글먼 하는 아버지가 하도 징그러워서 돌아가시면 그날로 누렁이부터 누구 줘버린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그런 마당에 아버지의 병아리 타령이 반가울 리는 더 더욱 없었고요.


유성시장은 4일 9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이에요.

그 날도 아침부터 비가 살짝 내리기 시작하였어요.

오매불망 병아리 타령을 하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아침식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부지런히 유성시장을 향해 집을 나섰어요.

"시장에 다녀올 동안 간식거리 잘 챙겨 드시고 계셔요."

아버지가 앉아계신 소파 근처 갈아놓은 사과쥬스, 시루떡 한접시를 나란히 내어드렸어요.


엄마는 아버지의 기대에 찬 얼굴표정이 못마땅한지 아버지에게 회심의 한방을 날렸어요.

"하도 소원하니께 유성시장에 가보기는 하는 디 병아리 없으믄 아예 못 사는 걸로 알어유."

그러면서 엄마는 뒤돌아서서 작은 소리로 내 귀에만 들리게 마음의 소리를 적나라하게 털어놓으셨고요.

"아이고야! 강아지에 고양이도 버거운 디 뭔 놈의 병아리여!

거그서도 병아리가 있어도 읎는 것이고 읎어도 읎는 거여.

그리 알고 가는 겨"


SE-8730530f-31e8-11f0-aeb4-f9c731529d16.jpg?type=w773 동네에서 만난 닭들☆


동물이라면 치매에 걸린 지금까지도 끔찍하게 이뻐하는 아버지, 그와 정반대인 엄마신 걸 알지요.

누구를 봉양하고 시중드는 것이라면 자기 몸 하나로 충분하다는 엄마이시니까요.

엄마는 누렁이, 고양이 이번 참에 입에 오르내리는 병아리까지 돌봐주어야 처지가 뻔하니 손톱만큼도 원치 않고 계신 거예요.

"애기처럼 짐승들 욕심만 낼 줄 아는 니 아부지 아니냐, 결국엔 너랑 내 손 모가지 아니믄 누가 돌보냐, 워메 나는 못햐."


결국 시늉뿐인 병아리를 구하기 위해 시장골목을 엄마와 함께 샅샅이 돌아보았어요.

한 때 동물 시장이 열렸던 골목을 찾아가 보았더니 역시나 휑덩그레한 빈터만 남아있어어요.

마침 그 터 앞에 어물전이 있어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요.

"병아리요? 여기 동물 시장 닫힌 게 언제라고요. 조류독감이 한창일때 모두 닫혀버렸어요."

엄마는 어물전 주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잘한 웃음이 살포시 입에 걸리셨어요.

"그려유, 고마워유."

엄마는 단박에 홀가분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해져서 두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듯 하였어요.

무심코 두 사람의 말소리를 곁에서 들으면서 딱 어울리는 정답을 찾아낸 기분이었어요.

엄마와 둘이 병아리 구경은 편히 접어버리고 아버지몫으로 달걀과 막내아이가 좋아하는 닭볶음탕 재료, 닭고기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물론 아버지도 나라에서 조류독감으로 동물시장 자체를 없애버렸다고 하니 아무런 불만이 없으셨고요.

한 지붕 아래에 병아리와 고양이의 숨막히는 전쟁이 펼쳐질 까 싶어서 살포시 구겨져가던 마음에 다시 맑은 햇살이 비추었어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

envelope-7076001_640.png 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발 마중』 자작시를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