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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마중』 자작시를 올려요

일요시

by 심풀


발 마중








이불 밖 몰래 나온 당신의 왼발이


시리게 하얗게 부서져 빛나는데


차마 스쳐가지 못하고 새겨본다




지난 밤 달아나지 못한 보름달이


낮은 곳에서 깊은 어둠을 비켜두고


고단한 발등에 내려앉아 쉬어가나




마음을 당기는 외로운 발그림자


오른발이 잠깨어 반겨줄 아침까지


혼자서는 부끄러워 한숨에 누웠겠지








5퍼센트, 자작시☆




이른 아침, 곁에서 잠든 남편의 모습이 가장 가까이에 있어요.

그러다 문득 남편의 비쭉 나온 발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두 발이 나란히 이불 밖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고요.

유난히 한 발만 비쭉 튀어나와 있는 경우에는 약간의 망설임을 겪어야 해요.

걷혀진 이불 한자락을 끌어당겨와 덮어주면서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막아줘야 하는데, 어쩐지 그런 행동조차 단잠을 깨우지 않을 까 싶은 거예요.


그래도 모른 척 돌아서면 괜시리 께름칙하여 결국은 이불을 살포시 덮어주어야 마음 한켠이 고요해지거든요.

(핸드폰으로 슬그머니 사진을 찍어두는 날도 있고요)

시를 지으면서 퇴근이 늦은 남편이 달이 떠오르면 돌아오는 과정을 떠올려보았어요.

자연스레 달빛이 마음을 채우고 '달마중' 대신에 그 자리에 '발마중'이라고 해야겠다 싶었고요.



잠이 많은 편이라 가족중에 제일 먼저 잠이 들고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것도 일찍 맞게 되어요.

막내아이는 고2, 늦은 밤까지 제 할일을 하고요.

남편과 막내아이중 누가 먼저 잠이 드는 지도 까맣게 모르고 있고요.

두 사람만의 밤 몇 시간을 비워둔 채 잠이 들기 마련이라서요.

하여 밤을 피해 아침에 남편과 아이의 자는 모습이 남달리 보이나봐요.

어쩌다 남편과 막내아이, 둘이 자는 모습까지 닮은 듯 보이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되기도 하고요.


결혼하고 여태껏 남편과 한번도 떨어져 지낸 날이 없이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땐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삿짐도 힘든 줄 모르고 싸면서 떨어져 지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왔고요.

가끔 주말부부로 생활하는 친구들의 모습도 곁으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어쩐지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게 탐탁치 않아서 그리 할 순 없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남편이 아침을 챙겨먹지 못할터라 못미더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어요.

남편에게 직장생활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그의 건강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요.



KakaoTalk_20250510_071359052.jpg?type=w773 나무들의 모습은 고와서☆

라면 한 그릇도 손수 끓여먹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거든요.

배를 곯으면서 기다리면 기다렸지 무엇을 만들어 먹으려고 애를 쓰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음식에 영 관심이 없는 남편, 옷차림에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지요.

무엇을 먹고 입든지 주는 대로 환하게 웃으며 살뜰히 먹고 입어주니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 까 싶기도 해요.

반찬 그릇을 설거지 하듯이 싹쓸어 먹는 일이 어디 쉬운가.

매번 기쁜 낯빛으로 식탁앞에 앉아 처음처럼 반갑게 음식을 마주하는 모습이 참으로 고마운 남편이에요.

기껏 정성들여 만들어놓고도 남편처럼 기꺼운 모습으로 마주하지 못하는 듯 해요.

"무엇을 먹고 싶어요?"

묻자마자 남편은 주저없이 대답을 하곤 해요.

"당신이 만들고 싶은 것 중에서 제일 쉬운 것, 무엇이든지 다~ 좋아요."

덕분에 음식에 대한 고민은 적은 편이라 부엌일이 수월한 편이에요.

공들인 음식에 맛이 없다는 말은 들으면 음식을 만드는 입장에선 힘이 쫙 빠지는 일이잖아요.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남편이 곁의 아내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어요.

남편과 막내아이,두 사람이 깊이 잠든 일요일 아침에 글쓰는 고요한 시간속에서 머물러 보아요.

진심에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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