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집으로 들어서는 진입로 둑길 보리수 나무위에 빠알간 보리수 열매가 다닥 다닥 열렸어요.
산책나온 사람들이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이들의 환호성까지도 쉬이 들을 수 있어요.
"와우! "
누구라도 멈춰서서 몇 개씩 따먹고 지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에요.
도로변에 심어놓은 것이라 탐스런 모양새에 저절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멈추는 것은 당연할 일이니까요.
남편과 함께 둑길에 서서 보리수를 우선 익은 것부터 거둬들이기로 하였어요.
한눈에도 푸른 잎사귀마다 주렁 주렁 열린 보리수, 한꺼번에 모두 익을 수 없는 노릇이라 군데 군데 덜 여문 열매도 있었어요.
먹을 수 있을 만큼에 더하여 동네회관 할머니들과 이웃에 나눠줄 몫까지 애초부터 셋으로 나눠야 할 요량이었어요.
(보리수의 짱한 붉을 색에 홀려서 맛까지 매혹적일 것 같지만, 실은 보리수의 뒷맛은 얼마간 시큼,텁텁해요)
알맞게 익은 것만 모아놓으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나뭇가지째 거둬들인 것이라 눈대중으로 더 풍성하게 많아보였나봐요
보리수는 농작물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요.
심어놓으면 해마다 아낌없이 붉디 붉은 열매를 선물해주고 있어요.
보리수 나무에 딱히 애써서 보살펴 준 정성조차 없었어요.
그러니 이맘때마다 거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고요.
자연이 까닭없이 보내준 아름다운 열매, 주인이랄게 따로 있겠는가.
심어만 놓았을 뿐인데, 저절로 자라나 튼실한 열매를 맺으니 참으로 대견하였어요.
그런 이유로 마을 이웃과 나누고 또 나누어도 아쉬운 것은 물론 아까울 게 전혀 없어요.
보리수 나무 아래에는 잡풀이 무성하게 올라와서 남편은 긴 장화와 밀짚모자를 쓰고 나무밑으로 향하였어요.
머리위의 보리수 가지가 손에 닿지 않아서 늘어진 가지를 쥐고는 잡아 당기면서 나뭇가지에 낫을 힘껏 내려 쳐야 했어요.
비스듬한 둑길, 서 있는 자리가 비탈길이라 오히려 먹음직스런 보리수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어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어느 가지에 제대로 무르익은 보리수가 열려있는 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고요.
더도 덜도 말고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그만이에요.
나무의 잔가지라도 마구 자를 수 없었어요.
하여 욕심을 내지 않고 두어개 가지만 꺾어 오토바이 바구니에 얹어놓았어요.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앞질러 집으로 돌아갔어요.
학창시절, 가창시험때마다 부를 수밖에 없었던 노래 <보리수>를 곁들여 올려보아요.
토요일 아침, 포르테디콰트로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새롭게 들리는 맛이 있네요.
걸어서도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길, 걷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어서 혼자 호젓하게 뒤따라 갔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바삐 지나쳐가는 길과 아무 생각없이 터벅 터벅 걷는 길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곤 해요.
기왕이면 더 느리게 더 한가롭게 시간속을 거닐고 싶은 마음인 것이지요.
남편은 상대적으로 짧은 거리도 걷는 것보단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밭일로 급히 다녀야 할 게 아니라면 시골길, 너른 들판을 두루 두루 살펴보면서 걷는 즐거움은 제법 크거든요.
논바닥에 우렁이가 굴러다니는 지 흙바닥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요.
물을 담아놓은 남의 논에 찰랑거리는 물살위에 연두빛 개구리밥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면서요.
초여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나날이 푸르게 제 빛을 한껏 내뿜고 있어요.
굳이 꽃다운 꽃들에게만 눈길을 꽂아둘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아무것도 아닌 이름없는 풀 한포기에도 살아있는 아름다움은 역시 피어나고 있어요.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의 흐름을 따라 잠들 수 없는 오늘이 다가오는 것처럼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