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건강한 먹거리로 건강한 똥을 누지요. 많이 읽다 보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어요.”
땡볕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 안도현 시인의 출판기념회였다. 부적처럼 품에 안고 간 그의 동시집 <냠냠>을 내밀자, 그는 대뜸 똥 이야기를 꺼냈다. 무더위를 이겨낼 만한 아름다운 똥을 선물 받았다. 꼭 만나고 싶었던, 꿈에 그린 시인에게서 잊지 못할 이름으로.
지난해 난생처음 <냠냠>을 읽고 밀려오는 벅찬 감흥에 들떴다. 그 기분에 취해서 동시를 지었다. 기껏 응모를 위해 대여섯 편을 지어봤으니 오죽하랴. 어찌 쓰는 줄도 모르고 흉내 내듯 쓴 동시였다. 그럼에도 세상일은 모르는 법, 동서 문학상에서 그중 한 편이 동시 부문에서 입상하였다.
덜컥 상까지 받고 보니 시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와 동시를 가릴 것 없이 배운다. 왼손으로 동시를 짓고 오른손으로 시를 짓는다. 습작 노트에 차곡차곡 시와 동시가 씨앗처럼 박혀있다.
브런치 스토리에 그중 한편을 일요 시로 발행하고 있다. 농부이면서 브런치 작가로 시인의 꿈을 꾸고 있다. 브런치 스토리, 거대한 바다에서 자작시를 발행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어설프게나마 지은 시 한 편 한편이 마중물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퍼내고 퍼내다 보면 맑은 시 한 편을 한 바가지 담아내는 꿈의 그날도 올 테니까.
정작 애써지어 놓고 내어놓을 자리가 없다면 시를 짓는 가슴에 사철 찬바람이 불어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불붙은 여린 불씨까지 꽁꽁 얼음장 밑으로 꼬리를 감춰버리는 날이 왔을지 모를 일이다.
끌리는 대로 시집을 교과서처럼 읽으며 내 멋대로 시를 짓는다. 그럼에도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어디선가 숨은 독자가 으레 찾아든다. 바람이 살며시 머리카락을 흔들어주고 가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얼마 되지 않은 독자의 이름은 가랑비처럼 가만가만히 나를 적신다. 따스한 관심에 힘입어 더 나은 시를 짓고 싶은 맑은 욕심이 잠든 나를 깨운다. 비록 수만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여도 충분히 감격스럽다. 차근차근 시를 향해 걷는 길, 굳이 작고 큰 기쁨을 나누어 마음 상할 일이 없으리라.
‘어쩌면 이렇게 멋진 시가 있을까?’ 울다 웃으며 시를 즐긴다. 시인의 눈은 다르다. 그 덕택으로 익숙하고 뻔한 세상은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선을 통해 세상은 단숨에 새로워졌다. ‘시’라는 탯줄로 새로운 삶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세상은 같으나 시를 품은 나는 달라지고 있다.
농촌 마을, 논밭을 양팔 사이에 두고 걷는다. 밤새 노랗게 얼굴이 익은 달맞이꽃도 예사롭게 흘려 볼 수 없다. 가던 발길 멈추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마음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둔다. 그런 내가 새삼스럽다. 시와 함께 살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글의 소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듯 시도 그와 같겠지. 무엇이라도 써내야 할 것 같은 이 마음을 저버릴 수 없다. 못생긴 시를 짓더라도 괜찮지 않으냐 우김질 하는 것이다. 꿈은 꿈으로만 채워지고 시는 시로만 배울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낮에 농사일, 김장철 배추 모종을 고랑 사이마다 열 맞춰 심어두었다. 어둠 이불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면 푸른 꽃들이 배춧잎 사이로 반짝일 것이다. 깊은 밤, 시 공부 시간이다. 아름다운 시를 읽고 배우며 처음인 듯 시를 짓는다. 농부의 밭에 시인의 똥을 거름처럼 뿌려둔다. 보이지 않으나 나만의 눈에 보이는 찬란한 시인의 똥이 따로 있으니까.
논밭 아니면 도서관, 두 곳을 시소인 양 드나든다. 다른 듯 같은 두 가지 일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농사일도 시 공부도 내게는 그저 같은 일이다. 농부의 밭에 시인의 똥이 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 삶의 이야기를 담은 진짜 똥다운 시를 짓고 싶다. 부끄러움으로 얼굴 붉혀지지 않는 단 한 편의 시를 향해 걸어가야지. 브런치 스토리, 작가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내가 아는 가장 넓은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