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들기름을 즐겨드시겠지요.
비빔밥이나 각종 볶음요리, 우리 음식에 들기름의 쓸모가 다양합니다.
그 들기름은 들깨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여러 밭작물 중에서 들깨를 가장 늦게 심어서 거두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 베어낸 들깻단이 가을 햇살과 바람에 바짝 말라있었습니다.
새벽이슬이 촉촉하게 내린 이른 아침이 들깨를 털어내기 좋은 때입니다.
햇살이 반짝 떠오르기 전, 들깨알이 죄다 촉촉하게 물기가 어려있어야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떼구루루 도망쳐버릴 테니까요.
그런 이유로 들깨를 털어내는 날에는 특히 부지런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 어둠이 물러서자마자 평생 농사꾼 엄마가 부랴부랴 들깨밭을 향해 가셨습니다.
"먼저 가니께, 니 아부지 아침밥 좀 챙겨드리고 뒤따라 나오믄 되것어."
아닌게 아니라 농삿일이 아무리 바빠도 더 중요한 일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아픈 아버지와 학교가는 막내아이 아침밥을 준비해놓아야 하는 일입니다.
들깨밭일은 엄마와 둘만으로 아무래도 벅찬 노릇입니다.
며칠전,미리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여 놓았습니다.
남편은 아직 오십견을 앓고 있어 도리깨질은 영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둘보다는 셋이 훨씬 밭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요즈음 농촌 들녁, 일손이 부족한 가을철입니다.
그럴 땐 딱 한손이 아쉽기도 하고요.
한 무더기씩 들깨단을 새파란 포장위에 늘어놓으면 탁탁 숙달된 솜씨로 평생 농사꾼 엄마가 도리깨질을 이어가셨습니다.
"농삿일을 누가 힘으루 한다냐. 요령으로 하는거여."
엄마가 한숨 돌리는 참에 도울 생각으로 도리깨를 들고 어설프지만 힘껏 내려쳐보았습니다.
'휘익 탁 휘익 탁'
도리깨를 두 손으로 꼬옥 쥐고는 힘껏 한바퀴 돌리면서 나름대로 무게를 잔뜩 실어서 쳐내 보려했습니다.
살살 두드려서는 들깨송이에 든 들깨알이 톡톡 터져나올리가 없으니까요.
도리깨질, 익숙치 않으니 어설픈 솜씨를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힘으로 따지자면 남편이 셋 중에 제일 셀텐데, 어깨가 아프니 도리깨질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처음 오십견 진단을 받은 시절보단 근래 어깨 통증이 심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들깨단을 모으고 뒤집고 함께 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크게 의지가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고추밭에 그렇게 따라다니더니 이번참엔 들깨밭에 졸졸 따라나온 세발고양이, 달냥이입니다.
들깨단 무더기 사이를 요리조리 걸어다니면서 들깨냄새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집에 가라고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여전히 들은체 만체 합니다.
졸졸 따라다니는 게 이젠 버릇이 되었나봅니다.
집에서 외로이 뒹굴거리는 것도 심심한지 밭일을 구경삼아 따라나서거든요.
실은 풀따위는 한 입 먹지도 않으면서 호기심이 샘솟는지 킁킁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을 종종 본적이 있습니다.
도리깨질이 끝나고, 갈퀴로 검불을 살살 추려냈습니다.
털어낸 들깨알 속에는 마른 들깨 잎파리는 물론이고 나비에 각종 벌레까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색깔과 종류까지 다양한 벌레들까지 한데 뭉쳐서요.
연두빛에서 나뭇빛깔까지 꿈틀거리는 게 제멋대로 벌레 집합소가 따로 없었습니다.
둥근 체를 살살 흔들어서 쪼그만 들깨알을 따로 골라냈습니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깔끔하게 들깨알만 남게 만드는 거예요.
주르르 주르르 떨어져 내리는 들깨알갱이가 반갑고 고와서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어느 새 깔끔한 모양새가 갖춰진 터라 보기에도 흐뭇하였습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꽤 산뜻한 모양의 들깨알을 거둬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비가 너무 안와서 들깨 농사가 힘들엇는디, 가을에는 비가 너무 자주 와서 나락(벼) 타작이 힘들었구만."
들깨 모종이 햇살에 타 버려서 몇번이고 심어서 겨우 거둬들인 들깨농사였습니다.
올해 들깨 농사는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서툰 짐작도 한 적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끝까지 들깨 모종을 심고 또 심어서 가꾸어 얻은 가을걷이, 들깨 수확이었습니다.
"농사는 노력하지 않으믄 남는 게 없는 겨."
평생 농사꾼, 팔순엄마의 말씀이 어느 이름난 책속의 한 줄 글귀보다 지혜롭지 않은가.
이름 석자를 그리듯 쓰는 반까막눈 엄마가 전해주는 삶의 지혜가 아닐런지요.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다보면 열매를 맺고 거둬들이는 날은 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이 아니고,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그날은 오지 않겠는가.
다만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너 자신을 믿어라.
네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 테레사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