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친하고 어머니, 아빠, 아버지는 갈수록 멀다.

나만의 단어사전

by 심풀


★ 엄마

☆ 사전적 정의

1. 주로 어린아이들이 어머니를 정답게 이르는 말

2. 주로 자녀 이름 다음에 쓰여, 아이가 딸린 여자를 이르는 말


☆ 5 퍼센트의 정의

1.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쉽고 단순한 말.

2. 밤낮을 잊은 그 소리를 누군가 부르면 어디선가 뛰어오는 사람.


☆ 5 퍼센트 이야기

내가 아이의 눈으로 본 엄마는 평생 일중독자. 엄마는 늘 바쁜 사람, 한 번도 한가한 적이 없다. 무엇을 해도 늘 쫓기며 몰아치듯 살아간다.

심지어 놀 때도 바쁘다.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치면서도 대통령 선거처럼 진지하다.

"아, 내가 사십 원을 잃었는데~"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게 무겁다니 화병을 부르는 성격이다.

잃기도 하고 하면서 재미로 즐기는 화투놀이에 샐쭉하고 몇 날 며칠 곱씹는 데 재방송만 수십 번 해도 분이 풀리지 않으니 고질이다.

사람이 저렇게도 살 수도 있구나. 쉬는 것처럼 일하는 배짱이식, 바쁜 것 없는 나와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계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오늘 새벽에도 4시쯤 호미 들고 밭에 나가서 헤매고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으신다. 아파서 드러눕더라도 일 타령이 매일이다.

사람은 일만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쉬운 말을 하고 나면 백 마디 잔소리를 들어야 하겠지.

그것이 더 성가시고 화를 불러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 스타일로 살아가는 것,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도 별 수가 없으리라.


★ 아빠


☆ 사전적 정의

1. 어린아이의 말로'아버지'를 정답게 이른 말

2. 주로 자녀 이름 다음에 쓰여, 아이가 딸린 남자를 이르는 말.

☆ 5 퍼센트의 정의

1. 도시 아이들이 주로 쓰는 아버지 대신 부르는 말.

2. 시골 아이들에게는 낯간지러운 텔레비전에서 나 듣는 말.

3. 평생 입을 열어서 불러 본 적 없어서 우리말 같은 외계어.

☆ 5 퍼센트 이야기

아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 또래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뭔가 산뜻하고 귀엽고 세련된 느낌이 물씬 난다.

어쩐지 아직도 도시적이다.

남이 부르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내 입에서는 평생 흘러나온 적 없는 소리다.

평생 이 말을 사용한 적이 없다.

내가 자랄 적,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 모두 이 낱말을 입에 달고 있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다만, 내 아이들이 주로 말하는 것을 많이 듣고 있을 뿐이다.


★ 어머니


☆ 사전적 정의

1. 자기를 낳은 여성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2. 자기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친근하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3. 극진히 보살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5 퍼센트의 정의

1. 글쓰기 시간에나 엄마 대신 부르는 말

2.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평생 부르지 않는 그 단어.

3. 호칭을 적절히 찾지 못한 사람이 무심코 내뱉는 말


☆ 5 퍼센트 이야기


어릴 적 학교에서 글 쓰는 시간, 엄마보단 조금 격식을 갖춘 언어를 찾아 써야 할 때, 어머니를 대신 사용하기도 하였다. 괜히 엄마는 어린애가 혀 짧은 소리로 볼멘소리를 하는 양 들리고 어머니는 점잖은 성숙한 사람만이 쓸 낱말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보이기 위한 글쓰기에 어울리는 장식용 낱말이다. 교과서적인, 어딘가 딱딱하고 판에 박힌 쓰임새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학기 초에 아이의 학교에 방문해 보면 담임 선생님이 "☆ 어머니" 하고 부를 때가 있다.

학교 울타리 안에서 학부모로 참석한 자리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임에 틀림없다. 학교 외의 장소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사람을 만날 일도 없는 편이다. 아마도 선생님 입장에서 격식을 갖춰서 부르는 호칭으로 가장 알맞은 것이겠지.


★ 아버지


☆ 사전적 정의

1. 자신에게 혈통을 직접 이어 준 남자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2. 자식을 둔 남자를 자식과 관련하여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3. 어떤 일을 처음으로 개어가거나 완성한 사람 또는 크게 번성시킨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5 퍼센트의 정의

1. 충청도 사투리 '아부지'를 가리키는 말.

2. 평생 가까운 적 없으나 멀어진 적도 없는 말


☆ 5 퍼센트 이야기

아버지를 '아부지'로 부르면서 살아온 한평생이다. 맞춤법 검사기로 돌리면 틀림없이 이건 틀린 말이라고 해도 하는 수 없다. 거짓을 말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아버지가 표준말인 것은 이미 초등학교 때 알았으나 그건 시험 볼 때나 맞는 말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입에 착 붙은 '아부지' 아버지는 글을 쓸 때 사용하는 단어다. 소리로 부를 땐 여지없이 아부지를 찾는다.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 속에 있지만 한 번도 다정하거나 친한 적이 없다. 늘 근엄하고 권위적이면서 남존여비, 그 시대의 대표적인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가까운 적도 그렇다고 멀어진 적도 없다. 적당한 거리를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지나온 시간이다.

아버지가 허물어진 오늘, 기댈 곳 없는 아버지에게는 나와의 서먹함도 사치스러운 일뿐이다. 뭔가 더 끈끈한 정이 있다면 그림이 그럴싸할 것 같은데 한 글자도 쓰지 않는 노트처럼 휑하다. 어찌하여 가련한 모양이 눈에 밟히는지 모르겠으나 세월 속에서 나눠 받은 정은 정작 다른 이들의 몫이다.

받은 이들은 모른 체하고 받아본 적 없는 이가 더 짠한 설명할 수 없는 셈법이 따로 있으니까.

지난날을 따져 묻는 것은 모자란 사람이나 하는 일. 그런 자잘한 것을 담기엔 오늘이 귀하고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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