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수요일 저녁, 남편과 밤 나들이를 하였어요.
인근 대전으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공연을 다녀왔어요.
얼마만에 남편과 둘만의 밤외출인지 헤아려 보았지요.
으음, 그렇네요.
신혼 시절,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를 단둘이 다녀온 기억이 났어요.
그 이후로는 두 아이와 함께 넷이 뭉쳐 공연을 다니곤 하였거든요.
그러니 무려 이십여년 만에 둘만의 시간이었네요.
이른 저녁식사를 챙겨먹고 들뜬 심정으로 외투를 골라입으려 옷장을 열었어요.
등뒤에서 남편이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한 마디를 건넸어요.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밤 외출은 하도 오랫만이라."
남편은 평소에 옷차림에 그닥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그런 그가 멈칫대면서 이옷 저옷을 망설이는 모양새에 실실 웃음이 터지려했어요.
"그냥 깔끔하게 차려입으면 되겠지요."
남편도 저와 같이 모처럼 밤 외출이 설레이는 가보다 하였어요.
공연 30분 전에 도착하였지만 공연장 입구에서 가까운 곳은 이미 꽉 들어차 있었어요.
컴컴한 주차장을 빙빙 돌아서 겨우겨우 한적한 자리에 주차를 하고 한숨을 내리쉬었어요.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11월 중순, 싸늘한 밤 공기에 저 멀리 공연장의 불빛은 별처럼 반짝였어요.
계단을 서둘러 올라가는 몇몇 관람객들의 꼬리를 붙잡고 한발 한발 따라갔어요.
공연을 기다리는 수많은 관람객들이 로비를 북적북적 오고가는 게 공연의 인기를 실감나게 만들었어요.
공연장안, 남편과 빨간 좌석에 번호를 찾아 나란히 앉았어요.
텅빈 무대 바로 앞에서는 젊은 연주자들과 지휘자.
공연 전에 미리 조율을 하느라 '삐릿띠릿' 저마다 불협화음을 마음껏 내뿜고 있었어요.
어긋나는 악기소리와 연주자들의 바쁜 몸짓까지도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을 심심치않게 채워주었고요.
막상 공연무대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나마 어린이 연기자와 주인공들의 마무리 인사를 사진에 담는 것은 가능하였고요.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 이야기.
여주인공 미미가 병에 걸려 죽음을 맞으면서 오페라 ''라 보엠'은 막을 내렸어요.
이태리어로 줄곧 노래하는 내내 무대 양쪽에 자막이 있어 큰 도움을 받았고요.
한데, 남편이 눈을 슬쩍 비비면서 안경을 찾는 눈치였어요.
"잘 안보이는 데 안경을 깜박하고 챙겨오지 않았어요."
소곤소곤 남편이 아쉬운 소리를 하였어요.
한글 자막이 뿌옇게 보인다니 안따깝기 짝이 없었어요.
전체 4막, 배경설명이 자막마다 상세히 적혀 있어서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속으로 곧장 빠져들 수 있을텐데 말이지요.
이태리어로 전하는 사랑의 노래.
통틀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모르'뿐이었어요.
자막이 없으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을 거예요.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 자막을 보면서 영화를 즐기듯이요.
남편과 달리 또렷하게 보이는 글자의 덕택으로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어요.
열띤 공연의 답례로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하는 관객들.
너나할 것 없이 파도처럼 박수를 쏟아내면서 환호성으로 응답해주었어요.
남편과 둘만의 외출,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짧지만 긴 여운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픈 시간이었어요.
아름다운 가을 밤, 미미의 노래가 어느 꽃보다 고왔기 때문이겠지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