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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아버지는 빗물같아서

시골이야기

by 심풀

얼마나 오래 한 지붕을 이고 함께 살아계실 수 있을까?

아버지는 이제 제대로 씹지 못하십니다.

무엇이든 믹서기로 갈아드리면 그제서야 삼켜버리고 마는 아버지.

귤, 사과,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씹는 즐거움은 내년에 구순을 바라보고 있는 치매 아버지에겐 머나먼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엊그제 구순을 넘긴 당숙모의 장례식이 치뤄졌습니다.

아버지보다 서너살 많은 당숙모였고요.

그 당숙모는 지난 여름 막내 아들의 등허리에 업히어 아버지를 딱 한번 찾아오셨습니다.

치아가 모두 빠져나가서 잇몸으로도 먹을 수가 없다면서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던 모습이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8월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땡볕아래, 그야말로 마지막 걸음을 하신 셈이었습니다.


KakaoTalk_20251125_075918746.jpg?type=w773 비에 젖은 콜라비☆



온 집안을 통틀어 아버지 당신의 차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하루 하루 절감하고 있습니다.

묽게 갈아놓은 음식이지만 아버지 혼자 수저를 들어 잡수실 수 있고, 화장실에도 혼자 느릿느릿 다니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런대로 입맛은 살아있는 편이라 간식 릴레이도 여전하고요.


삶의 끝자락에 선 것을 당신만 모르고 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인들이 덕담삼아 이런 말을 아버지에게 종종 건넵니다.

"백살까지 오래 오래 사셔요."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아버지는 "그려, 그려."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구부정한 어깨에 검버섯으로 덮인 아버지의 낯빛이 모처럼 환하게 피어올랐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물쩡 둘러댈 줄 모르고 오래오래 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대로 알 수 있었고요.



KakaoTalk_20251125_075910463.jpg?type=w773 이파리위에 빗방울이 떼굴떼굴 구르고☆


평소에는 도통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 며칠 전에는 예상밖의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막내야, 벼 타작한 거 농협에서 돈 들어왔어?"

농삿일에도 아무런 관심조차 없으셨는데 웬일인가 싶었습니다.

"네, 벼 타작하고 며칠 뒤에 바로 입금되었어요."

대답을 하면서도 아버지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시는 지 가히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는 나 그 돈 좀 쓰야것어.

니 엄마랑 상의해서 뭐라도 하구 싶어서 그랴."


으음, 아버지에게 무엇이라도 해드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삭아서 다 빠져버린 아버지의 엉성한 치아, 이미 치과에서도 아무런 치료를 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이것만, 어찌해야 할른지요.

'아버지, 어느 치과를 가도 소용이 없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고요.

이젠 아무것도 해드릴 게 없다고 해요.'

아버지의 말씀대로 돈만 있으면 시원스레 새 치아를 해드릴 수 있었던 시절 역시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을 아버지 당신만 까맣게 모르고 계신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만 더해줄 것 같아서 말문이 그대로 막혀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못해 대답을 어찌 어찌 해드렸습니다.

"알겠어요. 상의해 볼게요."

변함없이 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아버지입니다.

뭉터기로 빠져나간 치아를 깔끔하게 마련하고픈 아버지의 속 마음을 어찌 모를까요.

너무 잘 알겠어서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이룰 수 없더라도 아버지가 희망 한자락을 고히 품고 사시길 바라니까요.

진심에 진심으로.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안네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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