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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발로도 생쥐사냥은 할 수 있어

시골이야기

by 심풀

세발 고양이, 달냥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세발로 껑충껑충 달리면서 씩씩한 모습을 잃지 않으니 어찌나 신통한 지 모릅니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벌컥 열고 서너걸음을 뗄 적이면, 어디선가 부리나케 달려오곤 합니다.

마당 앞 덤불아래서 부스럭 부스럭 딴 짓을 하다가도 인기척을 느끼고 그 세발로 거침없이 뛰어오는 겁니다.

앞발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가 휑하니 비어있는 탓에 가만히 뜯어보면 이런식으로 말이에요.

하나 남은 앞발을 지렛대 삼아 몸에 중심을 잡기 위해 살짝 안쪽으로 틀어서 내딛으면서요.

참으로 영리한 고양이의 전략 아닌가.

살아남기 위하여 남아있는 앞 발을 두 발처럼 쓸 줄 알다니 보면 볼수록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많은 날중에 어느 날, 그 어느 날 말이에요.

한없이 내가 못나보이고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자존감이 바닥이 아니라 그 바닥의 끝까지 곤두박질 치는 그런날이 있지요.

잘못한 일도 딱히 없는 것 같은 데, 꽈배기 꼬이듯 얼켜버린 현실에 그만 까마득해서 두 어깨에 힘이란 힘이 모두 줄행랑을 치는 아득한 날 말입니다.

어찌어찌 반백살을 살다보니 뜻밖의 행운도 엉겁결에 만나는 가 하면 뒷통수를 후려치는 돌풍에 휘청대는 날도 있더군요.


KakaoTalk_20251127_101314119.jpg?type=w773 세 발 고양이, 달냥이☆


아무튼 그런 날에, 달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달냥이는 세발로도 이렇게도 열심히 사는 데 무슨 군말을 할 게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보는 것이지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온갖 불평불만의 소리가 찬물을 끼얹은 듯 그자리에서 그만 사그라듭니다.

달냥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깊은 속삭임을 전해주니까요.

사람에게 잃은 한 발을 잊은 채 다시 사람에게 기대어 사는 세발 고양이, 달냥이입니다.

어떤 원망도 신세한탄에 빠지지 않고 세발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고요.

엊그제 아침에는 흠칫 놀랐습니다.

마당 한 구석, 바깥 수돗가에 죽은 생쥐가 세마리나 누워있었거든요.

어디서 잡아왔는 지 몰라도 자랑스럽게 사냥솜씨를 보여준 셈인 것입니다.

여봐란 듯이 말입니다.

아래 사진에는 한 마리만 올려놓았습니다.

혹여 세 마리씩 이나 글친구들이 반가이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요.


SE-4003bacb-0a19-40d4-82e2-a3e9662902f8.jpg?type=w773 널부러진 생쥐


아파트, 도시 글친구들은 생쥐 자체를 만날 일이 없지 않을 까 싶습니다.

세발이지만 고양이로서의 본능을 그대로 뽐내고 있는 모습에 대견할 따름이었습니다.

생쥐가 나자빠져 있는 흉물스런 모습은 나중의 일이었고요.

"달냥아! 세 마리나 잡다니,

오호! 멋지구나. 제대로 밥 값을 하였어."

아낌없이 칭찬세례를 퍼부어 주었습니다.

달냥이는 부족해도 부족한 줄 모르고 자신의 본능대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네발로 살았던 시절을 돌아보며 속절없이 한탄하지도 않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지요.

생각이 많은 아니 잡념이 많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헤매면서 살아갑니다.

길이 있어도 맑은 두 눈을 들어 보지 않으니 길이 없구나하면서요.

지나간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거나 앞으로 다가올 것에 목매면서요.

그냥 서 있는 그곳, 그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그게 바로 길이 될 수 있을텐데.

세발 달냥이는 세발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해주었습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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