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아이야! 인자 재미지게 되가는 가벼."
동네 마실을 다녀온 엄마의 낯빛이 모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일주일 넘게 감기에 걸려 하루도 거르지 않던 동네마실을 벌써 며칠째 건너뛰어야 했던 엄마.
"옆 동네 있잖여.
그짝에 아주 꼬장꼬장 대나무가튼 양반이 하나 있는디 말이여, 고향땅을 돈 몇푼에 팔아 먹을 참이냐구하믄서 나서부렸댜.
월매나 꼬신지 모르것어.
그 동네 사람들이 반대한다구 죄다 모여갖구 도장을 찍어부렀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찬성이 절반만 되어도 땅을 내놓아야 한다는 개발법이 있다고 하여 아득한 참이었거든요.
'산업단지'를 내세우면 70퍼센트 찬성이 아니라 절반, 50퍼센트만 찬성하여도 나머지 의견은 묵살된다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주최측 사람들은 그것까지 이미 속속들이 알고 '산업단지 개발'을 진행하려 했던 것이었고요.
개발예정지 해당 토지에 낮은 산을 포함한 것도 어쩌면 이런 동네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막을 속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산(임야)는 농지나 대지에 비해 턱없이 싼 값으로 사고 팔게 마련인지라 임야주인들이 달콤한 돈놀음에 찬성해버리면 나머지 동네주민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어쩔 수가 없어지는 게 아닐런지.
다른 한편에서는 앞잡이 노릇을 하는 몇몇 동네 인사들에겐 후한 대우를 받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놓고 반대하는 토지주인들은 후에 헐값이 땅을 내놓아야한다는 식으로요.
얍삽한 사람들은 뒷구멍으로 개발주최측과 물밑 협상을 벌어서라도 최고값을 불러서 한푼이라도 더 많은 값을 받으려 애쓰고 있답니다.
조그만 동네에 개발이슈문제가 뜨고 나선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는디, 이장질을 하믄서 개발사무실에서 앞잡이로 일하는 게 불법은 아니라구 한댜."
개발사무실에 사무장으로 일하는 이웃 동네 이장님에 대한 동네사람의 반발이 들불처럼 뜨거워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관청에서는 불법이 아니라 하였다지만 동네 민심이 이미 떠났으니 껍데기 이장일 뿐일테지요.
한데 어쩌지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이장님도 초록은 동색이라, 개발찬성파인것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실은 개발 사무실에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것을 권유한 것도 다름아닌 제 동네 이장님이었고요.
"혹여 말이여. 우리 동네 이장이 너한티 뭐라구 하므는 말이여.
나를 팔어, 노인네가 안 한다구 하믄 될 겨.
니 아부지하구 내가 월매가 산다구 여그를 뜨것냐!"
개발이야기만 나오면 한결같이 반대하는 엄마입니다.
찬성하기를 독려하는 동네 이장님앞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을 참이시고요.
부디 맞불작전이 제대로 통하여 반대하는 이들이 한 목소리로 동참에 동참을 이어가야 할텐데.
'돈'이라면 여태껏 살고 있는 집까지 군말없이 내놓는 사람들, 그야말로 돈에 눈 먼 사람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돈에 비할바 없이 귀하고 귀한 고향, 더하여 정든 집의 의미를 모르는 탓이겠지요.
올 가을부터 동네에 불어닥치고 있는 개발바람이 언제쯤 사라져 버릴 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과연 그 끝자락에 개발이 막상 현실로 닥쳐올 지 한때의 불장난으로 끝날지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군요.
제 두 아이에게 고향을, 고향 땅을 고이고이 간직하도록 당부하고 싶었는 데 말입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돈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