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며칠 전, 호되게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소화불량인 줄 알았어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가하게 책을 읽으려는 찰나, 속이 더부룩하여 소화제를 한 알 꺼내 먹었습니다.
'저녁 먹은게 체했나보다'
소화제을 먹고 한 시간이면 웬만한 경우에는 약발이 들어 편안해져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뱃속이 불안불안해져만 갔습니다.
그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은근히 미련한 스타일인 가봅니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퇴근을 하였어요.
딱히 어떻게 아프다기보다는 그냥 몸이 개운치 않은 정도라 남편에게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더랬지요.
평소대로 잠을 청해보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뱃속이 부글부글해지더니 급기야는 설사를 내리 두어번 쏟아내야 했습니다.
안방 귀퉁이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장염이 찾아온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남편은 가르릉 코를 골면서 잠들어 있었고요.
이제는 어쩔 수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제서야 병원을 가지 않고는 안될 것 같았던 것이지요.
곤히 잠든 남편을 살살 흔들어 깨웠습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부스럭 부스럭 잠이 덜 깬 모습으로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마음에 더욱 심사가 편치 않았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지금 문을 연 병원은 응급실 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세 시.
남편과 함께 거실로 나와보니 아침은 아직 멀리에 다가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따스한 물 한잔을 마시고 싶어요."
남편은 그말이 떨어지자마자 전자레인지로 물을 데워 건네주었습니다.
목이 마른 참이라 두어모금 따끈한 물을 마시고 났더니, 이번에는 울렁울렁 헛구역질이 참을 수 없게 기어올라왔습니다.
"우웩우웩우웩"
남편은 곁에서 발빠르게 토사물을 받아내주고 치워주고 곁을 내내 지켜주었습니다.
"토하고 나니 속이 시원한 것 같아요.
잠을 못자서 그런지 지금 졸음이 쏟아져요."
거실에서 안방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이미 스스르 못채운 졸음이 물밀듯 달려들었습니다.
그렇게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미뤄둔 그날치 서너시간 깊은 잠을 잤어요.
아침 아이의 등교길에는 속이 비어서 기운이 없을 뿐, 구역질과 설사가 멎으니 그런대로 부엌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9시 병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진료를 받으니 예상대로 장염진단을 받았고요.
"우리나라 굴은 대부분 양식인데, 끓여다 균이 살아있을 수 있어요.
사나흘씩 장에서 서식하면서 잠복기도 있고요.
저는 절대 굴은 먹지 않아요."
믿고 다니는 내과 의사의 단호한 말에 움찔움찔하면서 고개를 마지못해 끄덕였습니다.
'이제 먹지 말아야 하다니, 굴이 얼마나 맛있는데…'
여름에는 복숭아 알레르기, 겨울에는 굴까지.
몸으로 앓아가면서 하나씩 멀어지고 있네요.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