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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기검진을 무사히 다녀오고

시골이야기

by 심풀

어제 오후에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올 수가 없습니다.

곁에서 부축할 사람도 꼭 필요하니까요.

남편의 휴무일에 맞춰 다녀오는 편입니다.

아침부터 남편과 둘이 면도와 이발, 손톱정리 등 아버지를 아이처럼 보살펴드려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이제 아버지는 보살핌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마셨습니다.

일상적으로 손씻고 세수하는 일까지도 모두 귀찮게만 여기시는 형편입니다.

"아버지, 오늘 병원에 가셔야 하는 날이에요."

귀 어두운 아버지인지라 저절로 목청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솜씨좋은 남편이 면도기처럼 생긴 가정용 이발기로 쓱쓱싹싹 삐죽하게 자란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수 년째 미용실을 다니지 않고 계십니다.

치매환자인 아버지에게 멋들어진 머리모양이 따로 있지 않아요.

그저 깔끔한 모양새면 마음에 드는 셈입니다.

남편에게 머리를 맡기고 난 아버지에게 다가가 곧장 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렸습니다.

"금방 해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아버지는 살짝 손톱깍이가 찝힐까 으쓱으쓱 서늘한 느낌에 몸서리를 치셨습니다.

아버지의 늘어진 살갗이 얇아서 점점 예민하여만 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살살 해드릴게요. 움직이지 마세요."

손톱을 잘라드릴 때마다 꺼림칙한 내색을 하시는 통에 살살 달래듯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심스러워서 자꾸만 손톱깎기가 엇나가는 탓에 슬쩍 조바심이 났습니다.

"다 끝나가요. 금방 끝나요."

손톱은 열개.

금방 끝나간다는 희망의 말을 아버지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 손톱정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SE-d18ec55e-bc7b-43fe-b03b-3ab933d51558.jpg?type=w773 빨강이 이뻐서☆


그다음은 아버지께 외출복을 갈아입혀드리는 일이 남아 있었더랬지요.

모처럼 병원나들이입니다.

속옷부터 양말까지 죄다 벗겨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드렸습니다.

한겨울인지라 이번참에 내복도 두툼한 것으로 바꿔드렸고요.

아버지는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하신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바깥 찬 바람이 들어갈까 싶어 모직모자를 찾아 아버지의 머리에 씌워드렸습니다.

집안에서 내내 의지하면서 걷는 보행기를 한 쪽으로 치워두고 지팡이를 건네드렸습니다.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한 발을 떼어야 하는 데, 돌연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지셨습니다.

"어지러워! 어질햐."

남편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부축해드렸습니다.

"의자를 앉도록 해야겠어요."

아버지곁으로 의자를 끌어와 그 자리에 잠깐 앉아 쉬도록 해드렸습니다.

"병원에는 천천히 가도 돼요. 조금만 쉬어 보셔요."

병원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하려면 당장 출발해야 하지만 하는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둘이 아버지 곁을 지키며 몇 분을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병원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도 없어도 할 수 없지.'

혼자 속엣말도 했고요.

SE-15bc9238-28c8-442d-b30d-c26ddc4bafe1.jpg?type=w773 병원 로비에 크리스마스 장식☆


"괜찮으세요? 이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아버지 모습에 재차 질문에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서 어쩐지 못미더워서 말입니다.

"이제 괜찮어."

잠깐 찾아온 어지럼증은 오던 것처럼 갈 때도 소리없이 꼬리를 감췄습니다.

아슬아슬한 심정을 겪어야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형 종합병원, 벌써 십여년 가까이 아버지를 모시고 다닌 익숙한 곳입니다.

그 곳은 로비에 마침 휠체어가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같은 환자들에게 휠체어는 꼭 필요한 이동수단입니다.

자동차가 서자마자 문을 부리나케 열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갔어요.

그러곤 가장 가까이에 놓인 휠체어를 꺼내 자동차앞으로 굴려 왔습니다.

'휠체어가 딱 맞춰 있구나'

단 한 번의 걸음이 천리길같은 아버지같은 환자들에게 휠체어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신경과 대기실에 들어서니 이미 예약시간보다 4분이 늦었더군요.

"조금 늦었어요."

대기실에서 또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대형병원은 예약시간을 정해놓아도 제 시간에 딱 맞춰 진료를 볼 수는 없는 구조거든요.

그 사이, 아버지는 인지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그에 이어서 검사결과를 담당의사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검사한 수치와 별달리 차이가 없어요. 환자분이 가끔 어지러운 것은 전립선 약을 잡수고 계신 탓이에요."

담당의사는 마치 병원까지 오는 험난한 과정을 마치 환히 본 것처럼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그제야 떨떠름한 속이 시원하였습니다.

'큰 일 하나를 끝마쳤구나'

담당의사의 진료가 끝나고 돌아서 오는 길에 그제서야 병원 로비에 멋들어진 아름다운 트리장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의 사진처럼요.

아버지의 인지 기능 검사결과를 듣고 나서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사람이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다.


-유태인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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