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일년 한번, 이 즈음에만 치뤄지는 엄마의 곰국 만들기.
부지런쟁이 엄마는 하루 전날 찬물 가득히 부어 뼈를 담궈 핏물을 먼저 빼내어놓았습니다.
평생 몸에 밴 급한 성미가 나이가 많아졌다고 줄어드는 것은 아니더군요.
다만 달라진 것은 부랴부랴 곰국을 끓여놓으면 그날 밤부터 엄마는 된통 몸살이 나곤 하십니다.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하게요.
그럼에도 엄마는 도통 멈출 줄 모르십니다.
"야야! 어물어물하다가 불 꺼지므는 안되니께 잘 봐야 혀."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삐 달려나가셨습니다.
마당 한구석 화덕에 커다란 솥단지 속에 소뼈에 소고기까지 골고루 넣어놓고는 엄마는 불씨를 살리려 불쏘시개를 연신 넣어야 하니까요.
그 사이 먼 발치로 건너다 보았습니다.
불가에 쭈그려 앉은 엄마의 등허리를 더듬어 보았지요.
그도그럴것이 사이사이 부엌일이 따로이 남아있는 통에 말입니다.
먹는 즐거움으로 하루 하루 기대어 살고 계신 치매 아버지에겐 입맛을 다실 간식이 꼭 필요하거든요.
마당에선, 바짝 마른 나무 장작이 탈없이 불이 붙었는지 얼마지나지 않아 하이얀 김이 모락모락 솥단지 틈새로 구름처럼 솟아올랐습니다.
뜨거운 불길에 휩싸여 그만 못이기겠다는 듯이 백기를 들어버린 것이지요.
뼈와 뼈 사이에 든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아버리는 겁니다.
단단한 소의 뼈가 녹아서 하얀 눈물처럼 흘러내는 것이겠지요.
엄마표 곰국으로 변해가는 순간입니다.
쌩쌩 칼바람이 불어 온몸이 얼어붙었다해도 장작불 앞에 앉을라치면 금방 얼굴부터 화끈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붉은 장작불의 뜨거운 열기가 후욱 찬바람을 한꺼번에 밀쳐낸 것이지요.
나무 장작이 마지막 남은 제 몸을 뜨겁게 태우고 태우면서 가장 높은 온도로 불을 질러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뜨겁고 뜨거운 열기에 진득하게 불앞에 앉아서 한가로이 불멍을 할 여유를 누릴수가 없었습니다.
장작이 타는 속도에 맞춰 연신 마당을 오락가락 하면서 불씨를 활활 살리는 데 온 마음이 쏠려 있었습니다.
하여 으레 곰국 끓이는 날은 여느 날보다 두어배 더욱 바쁘기만 하였고요.
"이번 참엔 내가 나가서 장작을 더 넣을 테니 조금 누워서 쉬셔요."
엄마와 둘이서 오거니 가거니 하면서 서로 불앞에서 하루종일 불침번을 섰습니다.
저녁무렵에야 끝나지 않을 듯 타올랐던 불길은 멈출수가 있었습니다.
하얗게 우러나온 곰국을 남겨두고요.
하룻밤, 식혀둔 곰국을 식당용 국통에 담아두면 두툼한 쇠기름 덩어리가 곰국위에 시루떡처럼 엉겨붙습니다.
그러면 기름덩어리를 낱낱이 걷어낸 다음 비닐봉지에 작게 작게 나누어 담아두었습니다.
아래사진처럼 한번씩 쉬이 먹기 편하도록요.
언니와 오빠들이 언제라도 집에 다녀가면 몇 개씩 손에 쥐어줄 요량으로요.
(마당 창고, 식당용 대용량 냉장고안 냉동실에는 곰국이 줄지어 꽁꽁 얼려져 있어요)
곰탕을 끓여내느라 동네회관 마실도 다녀오지 못한 엄마는 그 날밤에 여지없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셨습니다.
"워메! 죽것네! 내년에는 못 하것네. 왜이리 삭신이 쑤신다냐. 어깨죽지도 아픈 것 같어 야."
그 모습이 안쓰러워 말대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럼,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셔요. 내년에는 엄마가 곰국 안 끓여도 뭐라는 사람은 없을테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스럽기 짝이 없지만 말이라도 한번 해보는 셈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천수만번 죽겠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의 입버릇인 것을요.
엄마는 고달픈 과정을 빤히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내년 요맘때가 되면 또 기어이 곰국을 끓이신다고 나설 것 같습니다.
엄마는 자식들을 한 평생 먹이고, 먹이는 즐거움으로 사셨으니 쉬이 내려놓을 수가 없나봅니다.
만들어내는 데는 긴 하루에 불구덩이.
막상 식탁위에서는 쫑쫑 썰어낸 대파의 향기에 후루룩 자취없이 사라지는 음식, 곰탕입니다.
엄마는 올해도 가까스로 불과 함께 자신의 정성을 담아서 곰국을 활활 끓여내고 이내 꽁꽁 얼려두었습니다.
엄마의 이미 다 커버린 자식들을 위하여.
진심에 진심으로.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
-조지 버나드 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