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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거우면 나무도 부러지는데

시골이야기

by 심풀

배추밭에 덩그라니 배추 몇 포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집뒤에 배추밭, 좁은 길이라 배추를 잘라내고 옮기는 일이 수월치 않아요.

으레 남편이 지게로 짊어지곤 하였는데 올해초부터 오십견을 앓는 통에 그 역시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여 나무 기둥을 칭칭 감아서 들것을 이용해 배추를 들어날랐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며칠전과 달리 확연히 따스해진 지난 토요일, 아침에요.

새벽 서릿발, 바람에 나부끼던 첫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이파리를 자랑하는 배추포기들이 여간 신통하지 않았거든요.

얼었다 풀렸다하면서 노오란 배추속 고갱이는 더욱 고소하게 여물어갔을 테고요.

억센 이파리까지 따로 떼어내지 않고 속속들이 챙겨오자니 들것이 꽤 무거워졌습니다.

들것에 몇 킬로그램의 배추를 담아냈는지 눈대중으로는 가늠할 수는 없었어요.


SE-f3ce186f-67cd-457b-88fd-504a7b7ec5e5.jpg?type=w773 들것에 담은 배추☆


남편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배추포기를 집안으로 거둬들이려는 것에만 열중하였습니다.

밭고랑 사이를 서너번 오갔어요.

어느틈에 배추포기들을 하나둘 창고 한 귀퉁이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쿠!

욕심이 과했던 것이었나봅니다.

"빠드득 짝, 빠드득 쩍"

뭔가 떨어져나가는 파열음이 쏟아지면서 바쁜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나무 막대기가 그만 배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만 걸음이 저도모르게 멈춰졌습니다.

"어엇! 어째요?."

남편의 등뒤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금방이라도 들것안에 든 배추포기들이 땅바닥으로 데굴데굴 쏟아져 내릴 것 같아 위태위태하였습니다.


KakaoTalk_20251207_114737342.jpg?type=w773 배추밭에서☆


남편도 난데없는 소리에 놀랐는지 등을 돌려 흠칫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그대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힘차게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일단, 멈추지 말고 이대로 갑시다.

가다말면 이도저도 힘들어요."

남편의 단호한 한 마디에 조심조심 발걸음을 맞추어 무사히 배추를 실어다 놓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부러진 나무 조각을 모조리 떼어내고 이번에는 단단한 쇠파이프로 갈아볼게요."

웬만한 고장이나 수리정도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남편 혼자 뚝딱 해내는 편이라 이번참에도 믿고 기다려보았습니다.

아래 사진을 찍어두고는 가만가만 남편을 지켜보았어요.

남편은 익숙한 솜씨로 조각난 나무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묵직한 쇠파이프를 갈아끼우고 고정시켜주었습니다.

단단한 쇠파이프와 들것이 헛돌지 않게 꾸욱꾸욱 꼼꼼하게 한데 엮어놓았고요.


KakaoTalk_20251207_114802355.jpg?type=w773 나무기둥 대신에 쇠파이프 ☆


'일 욕심도 과하면 오히려 더디게 되는구나'

한포기만 더, 한포기만 더 하면서 보태고 보태다보니 나무가 버틸 한계치를 그만 넘어서고 말았던 겁니다.

정작 견뎌줄 나무의 사정따위는 나몰라라 하고 말이지요.

미련한 짓인줄 지나 보니 알겠습니다.

"이제 나무 한발에 쇠 한발, 어쩌다 짝발 들것이 되었네요."

집에 고양이도 네 발이 아니라 세 발, 더하여 들것도 짝발.

"쇠파이프라 아무래도 전보다 무겁기는 한데 단단한 맛은 있을 테니 괜찮아요."

남편의 날랜 솜씨로 새롭게 단장한 들것 덕택에 남아있는 배추를 마저 가져올 수 있었어요.

물론 한꺼번에 싹쓸어 오지않고 두어번 나누어서요.

무슨 일이든 과욕은 금물이구나.

어쩌면 조금 모자란 듯 하였다면 한결 나았을텐데.

잘 하려고 더 잘 하고 싶어서 무턱대고 애를 쓰는 일까지도 지나치면 화를 불러올 수 있으니 경계해야겠습니다.

두툼한 나무도 한순간 뚝뚝 부러지는 판국이거늘 무겁고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면 어찌 버텨낼 재간이 있으랴.

급할 수록 천천히.

차근차근 긴 인생여정에 먼 시선을 두고 살아가려 해요.

진심에 진심으로.





사람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만큼


행복하다.


-고대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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