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아침 해가 앞산으로 떠오릅니다.
위의 사진처럼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수 없게 말입니다.
그 불덩어리를 두 눈으로 먼 발치로 바라만 볼 수 있는 하루 하루가 어쩌면 축복아닐런지요.
2026년 새해 하고도 셋째날입니다.
얼마전 아버지의 눈이 충혈되어 한동안 걱정을 이어가던 때도 떠오릅니다.
흔히들 '손독'이 오른다는 말을 하잖아요.
이것저것 만지다보면 우리의 손에는 자연히 세균이 많이 번식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다면 손을 깨끗하게 씻는 일이 당연한 일이지만 아픈 아버지에겐 그조차 성가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목욕이나 세수을 할라치면 아이를 달래듯이 살살 아버지의 심기를 살펴가면서 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눈에 그만 손독이 오른 상태였습니다.
아버지의 한 쪽 눈이 빨갛게 충혈된 것을 알아채고는 우선 안과를 모시고 다녀오려했습니다.
"아녀! 안 갈겨!"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시면서 병원가는 것을 극구 거부하시니 어쩔줄 몰라 망연자실 하기도 수차례였습니다.
궁리끝에 제가 안과에 진료를 보고 사진을 가지고 가서 상담을 받아볼까 그런 엉뚱한 상상까지 해보았고요.
답답한 나머지 인근의 약국에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정을 해봤더랬습니다.
"약 효과가 적어도 좋으니 안약이라도 집에서 뿌릴만 한 것을 주세요."
약국의 약사를 붙잡아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뻔한 정답뿐이었습니다.
"어렵더라도 아버지를 잘 구슬려서 안과에 다녀오셔요."
누군들 아버지를 모시고 안과에 다녀오고 싶지 않을까요.
하도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어쩌지 못하는 처지인것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두어 군데 약국을 다녀오고 혹시나 하면서 들른 마지막 약국에서 희망의 불빛을 반짝 보았습니다.
"그럼 자세히 말씀해주시고 사진을 좀 다시 볼게요."
웬걸, 다른 약국과 달리 사정을 관심있게 들어주는 마음 착한 약사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거라도 한번 해보셔요.
충혈된 눈에는 효과가 있을거예요"
포기하려 했던 차에 뜻밖의 고마운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허리를 반으로 접고 고맙다는 인삿말을 연거푸 하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부터 아버지의 충혈된 한쪽 눈에 꼬박꼬박 안약을 넣어드렸습니다.
" 눈을 손으로 비비지 말고 자꾸 손대지 않으셔야 해요.
그래야 낫는대요"
당부에 당부를 이어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루하루 아버지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시간따라 스러졌습니다.
그 후론 다른 약국은 눈길조차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에 귀 기울여주는 약사분이 계신 그 약국에만 걸음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겠고요.
친절한 그 약사분 덕분에 아버지와 또 한 고비를 어찌어찌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아픈 아버지는 구순을 맞으셨습니다.
하여 아침 숟가락을 내려놓는 아버지께 다가가 절로 기쁨의 인삿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부지, 새해가 되었으니 올해로 구순이 되셨어요.
하루 하루 잘 지내오셔서 감사해요."
살다보면 마음 아픈 일, 후회스런 일 어쩌면 속터지는 일까지 불쑥불쑥 맞닥뜨리기도 하였습니다.
새해에도 언제 어떤 일이 닥쳐올 지 가늠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한 지붕을 이고 아버지와 함께 새 해를 맞을 수 있어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잉, 그려."
귀가 어두운 아버지, 새해를 맞는 감흥을 얼버무리고 마셨습니다.
아버지의 뜨듯미지근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가슴 한 귀퉁이가 뿌듯하고 감격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이런 날을 맞이할 수 있다니 감격스럽구나'
평생 농부, 건강하던 아버지셨습니다.
팔순을 맞이한 그 해 어느 날, 느닷없이 뇌경색 '풍'을 맞으셨거든요.
갑작스런 병고에 온 가족이 그대로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아닌게 모두들 겁에 질려 있었던 시간도 이제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언 십여년, 아버지가 병과 함께 무던히 견뎌오시고 계시니 하루하루가 감사하기만 합니다.
언니오빠들도 모였다 하면 한마음으로 올 봄 아흔살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생일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곤 합니다.
"아야! 우리 아부지 대단하구나.
올 봄 생일에는 우리끼리라도 집에서 아버지 구순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야겠네."
언니 오빠들도 너나할 것 없이 다가오는 3월 말, 아버지의 구순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생일의 주인공인 아버지보다 어쩌면 저희 자식들이 짐짓 기쁨으로 울렁대는 가슴을 안고 고대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