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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퍼센트 Aug 17. 2024

핸드폰 너머 도서관

글밭 일기 

 

  스마트폰 이름대로 온갖 기능을 해내는 요물. 지하철에서 게슴츠레 졸고 있는 사람 빼고 모두 핸드폰에 흠뻑 빠져 있다. 목을 쭉 당기고 눈길 닿는 끝까지 책 읽는 사람을 찾아 연신 두리번거린다. 책을 보는 사람이 어쩌다 눈에 띄면 길 가던 중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두근두근 반갑다. 무슨 책을 읽는지 그것까지 내심 궁금하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발걸음이 이끄는 곳은 동네 도서관이다. 책은 인생 나침반, 갈피를 못 잡고 헤맬 때마다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혀줬다. 한없이 퍼주는 도서관에 기대어 육아, 재테크, 지금은 글쓰기를 배운다.

 두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 산책하듯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글자를 모를 땐 그림책 구경을 하고, 한글 깨치기를 동화책으로 수월하게 이뤄냈다. 도서관 없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유혹적인 사교육 시장을 쉽게 등진 이유는‘책’의 힘을 종교처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기형도 시인의‘엄마 생각’한 구절을 똑같은 목소리로 되뇌는 경이로운 순간, 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네 개 눈동자가 하나로 스며들어 서로를 들여다보는, 더없이 아름다운 풍경. 

 도서관은 잊지 못할 추억을 말없이 건네주고, 너그러운 긴 팔로 우리를 끌어안는다.  도서관에서는 ‘밀 당’ 하듯 먼 눈길로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다. 한가한 여유로움이 최고의 매력이니까. 소유하지 않으니 홀가분해 한층 달콤한 시간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니면서 시장이나 마트, 은행 등 편의 시설이 집 근처에 없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역 도서관을 다니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마치 놀이공원 나들이를 가듯이 가슴 언저리가 남몰래 설레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살다 보면 질리지 않는 것이 드물다. 좋아하는 음식도 몇 번 먹으면 쉽게 물려버리지 않은가. 그와 반대로 도서관을 향하는 길은 갈 때마다 처음, 신선하고 새로움 자체니까.

 '오늘은 어떤 책을 만날까?’ 

 시간을 모르는 호기심이 매번 들썩인다. 그런 모습이 놀라워 가끔 내 속을 책상 서랍 뒤지듯 샅샅이 들춰보기도 한다. 도서관은 윤기 좔좔 흐르는 갓 지은 뜨끈한 고봉밥을 담아 주는 엄마 같다. 날이 갈수록 친근하고, 터무니없이 정감 가득할 줄이야. 세상 어디를 가도 이보다 살가운 끌림은 없으리라. 

  지하철 의자에 앉자마자 누구나 꺼내보는 핸드폰 놀음을 나는 모르는 척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는 것을 알아도 민망해서 흘깃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지. 그러다 조바심이 나서 대놓고 소매치기하듯 손을 가방 안으로 슬쩍 넣는다. 맨 처음 손끝에 잡히는 핸드폰을 밀어 제치고 반쯤 읽다 만 책을 냉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이제 안심이다. 

  나는 끝없이 읽어도 모자란 사람. 책을 친구 삼아, 도서관을 최고의 선생님으로 떠받들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글쓰기를 익히는 중이다. 글 솜씨가 요만한 것은 글눈이 아직 여물지 못한 것 일뿐, 도서관의 훌륭한 미덕은 내 글재주를 벗어난 일이다.  오늘도 도서관을 찾는 진심은 무더위를 잊은 채 철 모르게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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